매일신문

임동훈 전시회, 무수히 찍힌 '점', 시간의 지층으로의 초대

저마다 깊은 시간 간직한 점 바람, 공기 연기 연상

임동훈의 전시가 5월 25일까지 AA갤러리에서 열린다.

작가는 '시간'과 '정신'에 대해 탐구하고 있다. 지난 개인전에서 작가는 단세포를 연상시키는 커다란 덩어리를 화면에 보여주었다면, 이번에는 작은 점들을 무수하게 찍었다. 저마다 깊은 시간을 간직한 이 점들은 바람을, 공기를, 연기를 연상시킨다.

이번 작업은 물리적으로도 무수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작가는 캔버스 위에 잉크 방울을 떨어뜨리고, 이것이 자연스럽게 증발되고 건조될 때까지 기다린다. 그 물방울의 흔적은 중첩되기도 하고 특별한 흐름을 만들면서 저마다 다른 형태로 움직인다. 작가는 캔버스에 점을 찍어 말린 후, 실리콘으로 얇게 화면 위에 바른다. 실리콘 위에 또 점을 찍는다. 이처럼 10겹 이상 층을 올리면서 시간의 결을 보여준다. 실리콘이 겹쳐지면서 시간의 깊이를 만들어낸다.

이처럼 마냥 기다려야 하는 작품은 작가에게 무한한 물리적 시간을 요구한다. "이번 전시는 일 년 꼬박 준비한 전시입니다. 작품 한 점에 2, 3개월이 걸렸죠."

그에게 작업은 '마음을 비우고 자연의 순리를 몸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마치 실험용기에서 배양되는 미생물 같은 모습부터 별들이 탄생하고 소멸하는 우주까지 다양한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작가는 기존 작업에서 지구 환경에 대한 작업에 몰두해왔다. 지구 오염의 문제, 폐기물을 캐스팅해서 보여줌으로써 지구 오염 문제에 대해 직접적인 발언을 해왔다. 작가는 시선을 조금 더 정신적인 차원으로 집중시켰다. "인간의 내면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표현하고 싶은 욕구와 욕망을 억누르고 최소화하죠. 일종의 수행적인 측면이 강해지고 있어요."

그는 특정 자연 대상을 모티브로 삼지 않는다. 작가는 "점을 찍다 보면 자연스럽게 형태가 나오고, 이 점들이 이동해간다는 것을 발견하곤 한다"고 말했다.

미술평론가 이선영은 "임동훈의 원자론적 세계는 단순한 과학적 모델이 아니라,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들이 흙과 먼지로 되돌아간다는 보편적이고 원초적 경험에 기초한다. 점들의 방향성과 움직임이 있는 이번 전시의 작품들에는 분해나 해체보다는 생성과 약동의 분위기가 우세하다"고 말한다. 평온하면서도 경쾌하고, 잔잔한 움직임 속에서 점들은 예기치 못하게 관객들과 만난다. 수행적인 태도로 내면에 집중해온 작가가 그려낸 시간의 지층은 어디까지 우리를 초대할까. 053)768-4799.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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