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들이 춤바람이 났다! 그것도 제자와? 선생님들이 미쳤다! 헤드 뱅잉(Head Banging)에다 '롸~악 스피릿'(Rock spirit)?
대구 시내 학교에서 은밀한 프로젝트가 벌어지고 있다. 소리소문없이 일을 꾸미는 장소는 교실이 아니다. 평소 발길이 뜸한 으슥한 곳만 골라서 모인다. 심지어는 남들의 눈을 피해(?) 학교 밖에 그들만의 아지트를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표정들은 밝다. 모두 신이 난 모습이다. 영화 속 존 키팅 선생님(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과 마크 색커리 선생님(언제나 마음은 태양'To sir with love)이 현실세계로 들어온 걸까?
◆열정 짱! 예능 짱!
이들은 대구시내 각급 학교의 평범한 교사들. 다음 달 15일 스승의 날을 맞아 대구시교육청이 마련한 '대구 교사음악제-나는 교사다'를 준비하는 중이다. 교육공동체의 신뢰 구축을 통해 학교 현장의 어려움을 함께 극복해나가자는 취지로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열정 짱' 선생님이란 자신감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기 싫다. 실력도 중요하지 않다. 오직 '카르페 디엠'(Carpe diem'현재를 즐겨라) 정신만이 있을 뿐이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리는 올해 대회에는 사전 동영상 오디션을 거쳐 모두 7팀이 본선에 올랐다. 참여 교사들의 연령과 전공도 다양하다. 갓 대학을 졸업한 새내기부터 머리 희끗희끗한 고참까지 골고루 포함돼 있다. 미술 선생님은 춤을 추고, 물리 선생님은 드럼을 두드린다.
원화여고 교사 4명으로 구성된 댄스팀 '행복 원화'도 그렇다. 1985년생인 황성원(미술) 교사부터 1960년생 최재순(가정) 교사까지 같은 리듬에 몸을 흔든다. 깜찍함과 귀여움이 콘셉트라는 게 이들의 주장. 배경 음악도 "장점이 돋보이게 엄정화의 '숨은 그림 찾기'로 골랐다"고 김미순(46'무용)'이현정(32'영어) 교사는 강변(?)한다. 우승 상금은 없지만 따 놓은 당상이라는 표정들이다.
하지만 몸짓은 아직 어색하다. 연습하는 중에도 저절로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래도 안무와 백댄서를 자원한 학생들의 반응은 뜨겁기만 하다. 서예진(1학년) 양은 "함께 연습을 하며 무섭기만 했던 선생님과 가까워진 것 같다"며 "춤을 잘 추는 게 목표가 아니라서 한 번 더 웃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에는 실력파들도 상당수 가세했다. 송현여고 김태형(31'생명과학) 교사는 지난해 출시된 '르네라토'의 디지털 싱글앨범에 객원가수로 참여했다. 경연에서는 가수 이적의 '하늘을 달리다'를 부를 예정이다. 김 교사는 "사람들의 귀에 달콤한 음악을 들려주고 싶어 교내 댄스동아리 학생 5명과 함께 '스위트 오렌지'라는 팀을 만들었다"며 "제자들과 호흡을 맞추는 것은 정말 기분 좋은 일"이라고 자랑했다.
능인고 교사 5명으로 구성된 록밴드 '더 쌤'(The Ssam) 역시 만만치않은 내공을 갖췄다. 보컬과 기타를 맡고 있는 안해용(32'수학) 교사는 대학가요제 본선에 오른 바 있고, 곽제필(48'물리)'김상명(38'정보)'이준희(33'물리)'변태준(28'수학) 교사도 몇 가지씩 악기를 다루는 재주꾼들이다.
특이한 점은 멤버 모두 이공계 과목을 가르친다는 것. 안 교사는 "예체능 계열 진학 예정인 아이들은 수학에 대한 관심이 적지만 밴드 하는 선생님이란 걸 알면 대화가 훨씬 잘 된다"며 "학생들을 이해해주는 '형님'으로 평가받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얘들아, 우리가 지켜줄게
이 행사의 목적 가운데 하나는 교사'학생'학부모'지역사회가 함께 만드는 행사를 통해 긍정의 메시지를 전달하자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제주도에서는 한 학부모가 수업 중인 교실에 난입, 여교사를 폭행한 사건이 매스컴에 보도돼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또 학생인권조례 추진 등으로 학생 지도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교사들이 점점 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명예퇴직 교사는 2009년 2천776명에서 2010년 3천548명, 2011년 3천818명, 지난해 4천743명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해마다 많은 교사들이 교권 추락 등에 실망, 선망의 대상인 교단을 스스로 떠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영송여고의 '영송 패밀리밴드'는 눈에 띄는 팀이다. 7명의 멤버가 교사(김재덕'이혜림'이준성'신호창), 학생(정예나), 학부모(정재규), 지역민(이진구)으로 구성돼 있다. 기타 학원에서 만난 인연이 동호회로, 다시 학부모와 교사 관계로 이어졌다. 연습실도 학교 인근에 있는 강북새마을금고가 지하 창고를 흔쾌히 내주면서 간단히 해결됐다.
베이스 기타를 맡은 정재규(54) 씨는 "딸과 함께 연습을 하다 보니 선생님들과 형'동생 사이가 됐다"며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마음이 훨씬 든든해졌다"고 했다. 딸 예나(3년'보컬) 양도 "학교에서보다 선생님들이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며 미소를 지었다.
제자들을 더 잘 가르치겠다는 욕심으로 음악에 입문한 선생님도 있다. 초교 여교사로 구성된 국악팀 '소리 향기'의 강은정(24) 교사는 동료들과 함께 매주 한 번씩 이경숙(47)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이수자에게 '태평가' '밀양아리랑' 등 민요를 배우고 있다. 오는 9월 정식 임용될 예정인 그는 "아이들이 국악 수업을 낯설어하는 것 같아 직접 배운 뒤 가르치고 싶었다"며 "선생님이 많이 알면 애들한테 당연히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라고 반문했다.
색다른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기 마련이다. 6개 초교의 선생님 7명이 뭉친 댄스팀 '리턴스'(Returns)는 칠성초교 어린이들과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경연에선 탱고'왈츠'재즈댄스를 스토리로 묶은 '텔 바이 무브'(Tell by Move)를 올릴 계획이다. 노현호(36'칠성초교) 교사는 "대학 동아리 활동을 했던 선후배들이 다시 모였다는 의미에서 팀 이름을 지었다"며 "아이들과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너무 행복하다"고 소개했다.
이 밖에 월성초교'수성중 연합 팀인 '월성 뮤지션'은 기타'피아노'플루트'색소폰'봉고'젬베 등 다양한 악기를 취미로 하는 교사들이 그동안 갈고닦은 숨은 실력을 제자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다. 윤효연 교사는 "팀을 만든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아이들에게 친숙한 댄스곡을 어쿠스틱으로 편곡해 색다른 재미를 선사할 것"이라며 각오를 다졌다.
◆수상팀 선정도 학생'학부모'동료 교사가
올해 대회에는 이들 참가팀 외에도 다양한 무대가 준비돼 보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다. 경연에 앞서 영송여고 뮤지컬팀과 도원고 댄스부는 '선생님을 위한 맘마미아 갈라'를 통해 스승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표현한다. 축하 공연으로는 효성초교 그룹사운드 '록 키즈'(Rock kids), 퇴임 교사들의 색소폰'아코디언 중주, 현직 중'고교 교장들의 우쿨렐레 중주, 지난해 우승팀인 경북여고 '자체발광'의 연주 등이 이어진다. 소선여중합창단'대구중등교사합창단은 특별공연에 나선다.
특히 이 대회는 공모를 통해 선발되는 400명의 청중평가단(교사 200명, 학생'학부모 각 100명)이 수상팀을 선정하는 방식이라 더욱 흥미를 더할 전망이다. 대구시교육청 학교생활문화과 나혜랑 장학사는 "교사들이 잡무에 대한 부담 등으로 학생들과 진솔하게 대화할 시간이 부족한 게 현실"이라며 "지난해에는 교사들만 참가했지만 올해는 학생'학부모도 공연과 심사에 참여토록 함으로써 벽을 더욱 낮추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대구시교육청은 교사들이 감춰뒀던 예술적 재능과 끼를 표현함으로써 사기가 진작되는 효과가 크다는 판단에 따라 이 행사가 교육공동체 소통의 장으로 자리매김하도록 계속 지원할 방침이다. 일반인 대상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승, 세계적 인기를 모은 폴 포츠나 수잔 보일이 이들 가운데에서도 다시 탄생할지 모를 일이다. Coming Soon!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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