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과 중견기업은 우리 경제의 허리다. 1차에서 4차 밴드까지 제조업 생태계를 꾸리고 있는 재벌이나 대기업도 중소'중견기업의 뒷받침이 없다면 사상누각처럼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 경제 현실은 중소'중견기업이 대기업의 협력 파트너로 대접받기보다는 '머슴'처럼 종속된 구조다. 중소'중견기업 사장들은 대기업 부장이 호출하더라도 꼼짝없이 달려가야만 한다.
삼성, 현대차, SK, LG 등 4대 기업의 보유 자산 총액은 671조 원에 달한다. 민간 100대 그룹 전체 자산의 46.4%를 차지하는 규모다. 민간 100대 그룹이 차지하는 비중이 우리나라 정부 보유 총자산과 맞먹는 것을 감안하면 이들 4대 그룹이 한국 경제를 쥐락펴락할 수 있는 영향력을 갖고 있는 셈이다.
30일 정년 60세 연장법과 하도급법 개정안, 대기업 임원 연봉 공개법 등 일부 경제민주화법안이 30일 줄지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대기업을 중심으로 법안에 반대해 온 재계는 낙담하고 있다. 대기업들은 각종 공정거래법상 규제를 받는 상황에서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가세하면 이중 처벌 가능성이 있고 시장에서 형성된 납품 단가까지 협상을 요구하고 나설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재계를 대변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4대 경제단체들은 이번 법안 통과로 중소기업의 피해가 더 우려되며 단가 인하에 대한 부담을 가진 대기업들은 경쟁력 있는 해외 업체 등으로 거래선을 변경할 수 있다는 '협박성' 반응을 내놓았다. 또 원청 사업자의 75%가 중소기업인데 이들은 대기업과 달리 법무팀 등 체계적인 대응 조직이 없어 징벌배상제 확대 시 더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놀부가 착한 아우를 걱정하는 격이다.
중견기업들이 3년간 5천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려 대기업 반열에 올라서면 중소'중견기업에 돌아가는 각종 지원이 싹둑 끊기는 것이 우리 경제 구조다. 이 때문에 이들 기업들은 정부의 각종 지원을 받기 위해 회사를 분할하는 '회귀기업'도 나오고 있다. 이런 구조하에서는 수년째 지속되고 있는 2만 달러 개인 소득 시대에서 벗어나 3만 달러, 4만 달러 시대를 열기는 불가능하다.
최근 서울의 한 백화점에서 근무하던 여직원은 백화점 측의 높은 매장 수수료 때문에 매출 실적을 달성하기 힘들다는 문자메시지를 남기고 투신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화점 측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입점 업체들에 30% 이상의 높은 매장 수수료를 요구하는 불공정 관행이 철폐되지 않는다면 제 2, 3의 피해자가 나올 수밖에 없다.
최근 들어 일부 대기업이 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있지만 800만 명에 이르는 비정규직, 750만 자영업자들은 언제 생계의 줄을 떼일지 노심초사하며 불안에 떨고 있다.
과연 경제민주화는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재벌과 대기업군에 손해일까. 수년 전까지만 해도 휴대폰 업계 세계 1위 기업이었던 노키아 본사가 있는 핀란드 경제를 보자. 노키아의 생산력은 한때 핀란드 전체 GDP(국내총생산)의 50%까지 육박하며 핀란드 경제를 견인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삼성전자 등 후발 주자들의 맹추격과 급변하는 글로벌 경제 트렌드에 적응하지 못해 1위 자리를 내주고 작년 핀란드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8%까지 떨어졌다.
그렇다면 핀란드 경제는 추락했을까. 아니다. 노키아의 추락분을 중소'중견기업이 메꾸며 오히려 2%대의 경제성장을 이뤘다.
경제민주화는 재벌에도 궁극적으로 이익이 된다. 10명 이상 고용을 하고 있는 제조업체 60여만 개 가운데 40여만 개가 재벌의 협력 업체다. '공정경쟁의 틀'은 일시적으로 대기업에 피곤할지 모른다. 하지만 재벌 개혁과 독과점 구조 해소를 통한 경제민주화의 낙수 효과가 중소'중견기업에 돌아가면 이들 기업은 안정된 경영 환경 속에서 연구개발 투자를 지속적으로, 체계적으로 할 수 있고 이는 곧 대기업과 재벌의 경쟁력으로 연결된다. 재벌의 독과점 구조를 해소하면 경제 파이가 확대돼 결국 시장 확대로 이어져 대기업군의 매출 증대로 돌아갈 것이다.
금융위기에도 끄떡없었던 유럽의 경제 강국 독일은 우리 중견기업 숫자와 맞먹는 '글로벌 히든 챔피언'(세계 1등 기업)만 1천600개가 된다. '공정경쟁의 틀'이 형성돼 있고 허리가 튼튼하기 때문에 위기에도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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