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예부터 지금까지 세상은 청년들을 격려하고 희망을 준다. 하지만, 치열한 생존 전쟁에 내몰려 꿈과 희망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이 절박하게 사는 젊은이들도 있다. 하룻밤 묵을 곳을 찾아 떠돌아다니고, 한 끼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고물을 주워 생을 연명하는 이들은 취업과 미래를 걱정하는 '대졸자 청년'과 달리 생존 자체를 걱정하며 사는 청년들이다. 취재진은 지난달 22일 대구노숙인상담지원센터(이하 노숙인센터)에서 생활 중인 20, 30대 노숙인 4명을 인터뷰했다. 지적 장애가 있는 한 명은 정상적인 인터뷰가 불가능해 제외했으며 나머지 3명의 삶은 글로 재구성했다. 이들은 왜 이곳에 왔으며, 어떻게 살고 있을까.
◆32세 노숙인센터 입주자의 하루
2013년 4월 22일 오전 7시. 박명철(가명'32) 씨가 눈을 떴다. 2층 침대가 빽빽하게 들어찬 노숙인센터 4층이 그의 집이다. 오전 7시 기상은 이 삶에 '젖어들지 않도록' 센터에서 만든 규칙이다. 그는 간단하게 세수를 하고 3층으로 내려갔다. 무협지와 만화책, TV와 소파가 있는 휴식 공간인 3층에서 보통 낮 12시까지 TV나 책을 보며 시간을 때운다. 아침은 보통 거르고 점심 무료 급식 시간까지 기다린다. 이날은 판타지 소설인 '아키 블레이드'를 읽었다. 그는 "단편보다 '아키' 같은 시리즈물을 읽으면 시간이 더 잘 간다"고 했다.
낮 12시가 되면 번개시장 앞 '요셉의 집'으로 간다. 이곳은 점심을 먹으려는 노숙인들과 노인들로 언제나 붐빈다. 이날 메뉴는 김치와 밥, 감자조림, 미역국. 10분에서 15분이면 식사가 끝난다. 바쁠 것이 없는 삶이지만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빨리 먹고 비키는 것이 예의다.
점심을 끝내도 오후 1시가 채 되지 않는다. 그다음 목적지는 PC방. 보통 PC방 요금은 동성로와 가까울수록 가격이 올라간다. 시내 쪽은 한 시간에 1천원, 대구역은 500원이다. 박 씨는 5시간 정액 요금이 2천원인 동대구시장 근처 PC방을 찾았다. 6시간 동안 게임하고 2천500원을 냈다. 그는 RPG게임(역할수행게임)인 '던전 파이터'를 즐겨한다. "한 판하고 끝나는 게 아니니까 시간이 잘가요."
오후 8시 30분. 박 씨는 대구역 광장으로 향한다. '대구 노숙인 무료급식소'에서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박 씨는 "저녁이 되면 점심때보다 사람이 훨씬 많다. 새벽에 일 갔다가 막일을 하고 온 아저씨들까지 오니까 200~300명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곳은 의자도, 식탁도 없다. 매일 저녁마다 오다 보니 지하철 역의 낮은 벽을 식탁 삼아 서서 먹는 요령도 생겼다. 오후 9시 30분. 다시 노숙인 쉼터로 돌아왔다. 간단하게 씻은 뒤 3층에서 쉬다가 오후 10시가 되면 다시 침대로 돌아간다. 이렇게 그의 삶은 반복된다.
박 씨는 이틀에 한 번꼴로 고물을 줍는다. 활동 무대는 약전골목 뒤쪽 원룸 촌이다. 고물 줍기에도 박 씨만의 '룰'이 있다. "노인들이 많이 줍는 파지는 건드리지 않아요. 페트병이나 각종 헌옷, 신발. 종이만 빼고 돈 되는 것은 다 주워요." 리어카를 끌고 가다가 종종 그와 비슷한 나이대의 넝마주이들을 만나긴 해도 대화는 별로 없다. 그렇게 하루 4~5시간 돌아다니면 보통 7천원에서 많으면 1만5천원까지 번다. 이 돈으로 담뱃값과 생활비를 마련한다.
그는 꿈이 없다. 건설 현장에 나가면 돈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지만 "그건 돈 쓸 곳이 많은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래도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순간은 딱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고 퇴학을 당한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췌장암에 걸린 엄마를 좀 더 빨리 병원에 데려가지 않은 겁니다. 그러면 엄마도 살고, 나도 살 수 있었을 텐데."
◆28세 전직 나이트클럽 종업원의 '꼬인 삶'
김정민(가명'28) 씨는 그래도 한때 직장이 있는 사람이었다. 나이트클럽에서 5년 동안 손님들을 모으는 호객 행위를 하는 일, '삐끼'였다. 일터에서 그의 별명만 말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지만 2011년 나이트클럽이 문을 닫으면서 '실업자'가 됐다.
그간 모은 돈으로 6개월간 찜질방과 PC방, 모텔에서 전전했고, 돈이 다 떨어지면서 '거리 노숙'의 위기에 몰렸다. "그때 인터넷에 '노숙자'라고 검색했어요. 내 신세가 꼭 노숙자였으니까." 그리고 지난해 8월 노숙인센터 주소를 검색해 곧장 찾아왔다.
정민 씨는 요즘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칠성고등학교 앞 인력업체로 간다. 요즘은 날씨가 좋아서 건설 현장 일감을 구하기 쉬운 편이다. 이날은 대형마트 앞 건설 현장에서 철근 자재를 옮기는 일을 했다. 낮 12시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 2시쯤 빵과 음료수를 참으로 먹는다. 하루 꼬박 10시간을 일하고 7만원을 받았다. 김 씨는 "일터에서 먹는 밥이 '요셉의 집'보다 낫다. 고등어조림도 나오고. 보통 한 달 15일 정도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19살 때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보육원을 나왔다. 당시 김 씨 손에는 정착지원금 250만원과 고등학교에서 딴 제과제빵 자격증이 쥐어져 있었다. 이 돈으로 보증금 100만원, 월세 35만원짜리 방을 구했다. 첫 직장인 빵 공장에서 2년을 일했다. 월급을 차곡차곡 모으면 나쁘지 않은 삶이었다. 김 씨 삶은 친구의 한 마디에 바뀌고 말았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며 나이트클럽으로 오라고 했고 그는 빵 공장을 그만두었다. "테이블 하나당 매출 20%를 받았으니 많이 벌 때는 한 달에 450만원을 벌었어요." 쉽게 번 돈은 쉽게 쓰는 법이었다. 하지만, 이마저 나이트클럽이 문을 닫으면서 모든 것이 끝났다.
김 씨가 처음부터 보육원에서 나고 자란 것은 아니었다. 부모의 이혼 뒤 줄곧 아버지와 함께 살아왔지만 14살 때 아버지가 보육원으로 보냈다. "가 있어라." 이 한 마디를 김 씨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아버지는 오지 않았고 지금도 혼자다. "내가 많이 힘들었을 때 부모님의 도움을 조금만 받았더라면 지금 삶이 좀 달라졌을 거예요." 그는 아직도 아버지를 원망한다.
◆부모님 병원비 부담하다 벼랑에 몰린 31세
가난은 언제나 질병과 맞닿아 있다. 이남철(가명'31) 씨는 부모가 모두 암에 걸려 자신의 삶도 바닥으로 내려온 경우다. 그는 외동아들이었다. 아버지는 10년째 각종 질병으로 항상 병원 신세를 졌고, 병간호에 지친 어머니는 간암을 얻어 3년 전 세상을 떠났다.
그는 "고등학생 때 낮에는 학교 가고, 저녁에는 병원으로 갔었다"고 했다. 공고를 졸업한 뒤 공장과 건설 현장을 맴돌며 번 돈은 고스란히 병원비로 들어갔다. "한 번 수술할 때마다 수천 만원씩 들어갔어요. 내 벌이로 감당할 수 없어서 신용카드 현금 대출을 받았습니다."
병원비로 빌린 돈만 5천만원. 어머니는 죽고, 그는 신용불량자가 됐다. 어머니가 죽은 뒤 전국의 건설 현장을 떠돌았다. 지난해에는 세종시 건설 현장에서 일했다. 새 도시가 생기고, 건물은 계속 올라갔지만, 그곳에 그가 머물 집과 직장은 없었다. 건설업은 '한철 장사'다. 공사가 끝나거나 날씨가 추워지면 일감이 사라진다. 김 씨는 "거기서 만난 아저씨가 이런 곳(노숙인쉼터)이 있다고 슬쩍 흘렸어요. 내 상황이 안 좋으니까. 인터넷으로 찾아봤죠." 올해 1월, 바람이 매서웠던 겨울 일주일간 거리를 맴돌다가 결국 이곳으로 왔다.
이 씨는 부지런한 사람이다. 한 달에 20일 정도 건설 현장에서 일을 한다. 일당 7만원을 꼬박 모아 빚을 1천만원 넘게 갚았다. 통장에 돈을 넣으면 5분도 안 돼 카드사에서 빼간다. 그는 "빚을 다 갚을 때까지 돈을 벌어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도 무료 급식소는 되도록 가지 않는다. "젊은 놈이 벌써부터 공짜 밥 먹고 다닌다"는 주변의 눈빛이 싫어서 4천원을 주고 식당 밥을 사먹는다. 이 씨의 소박한 바람은 '평범하게 사는 것'이다. 안정적인 직장과 따뜻한 집. 이 씨는 "저에겐 가장 어려운 일이 평범하게 사는 것 같네요"라며 고개를 숙였다.
기획취재팀=이창환기자 lc156@msnet.co.kr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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