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이와 더 많이, 더 잘 놀기 고민 이상한가요?

'공동육아' 나선 엄마·아빠들

5월 5일 어린이날을 맞아 여러 지역 단체 주최로 신매광장에서 열린 어린이날 행사에 대구공동육아협동조합 아빠들이 직접 준비한 마술공연을 하고 있다. 또 아이들이 가득 탄 꽃마차를 끄는 아빠들. 체험부스에서 가면을 만드는 아이들. 대구공동육아협동조합 제공
5월 5일 어린이날을 맞아 여러 지역 단체 주최로 신매광장에서 열린 어린이날 행사에 대구공동육아협동조합 아빠들이 직접 준비한 마술공연을 하고 있다. 또 아이들이 가득 탄 꽃마차를 끄는 아빠들. 체험부스에서 가면을 만드는 아이들. 대구공동육아협동조합 제공

별난(?) 아빠, 엄마들이 있다. 온통 아이들 생각뿐인 것 같다. 글자 한 자라도 더 가르치고, 예'체능에서도 앞서가는 자녀로 키우기 위해 사교육 등에 관심을 갖고 동분서주하는 부모 얘기가 아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잘 놀고, 더 많이 놀고, 함께 놀까'를 고민하는 '좀 이상한' 부모들이다.

'ㄱㄴㄷ'도 가르치지 않고 자녀를 학교에 보내놓고는 걱정도 안 한다. 그냥 "잘 놀았다"고 하면 마냥 좋아라 한다. 놀다가 부딪히고 조금 다쳐도 '씩' 웃고 만다. 어떻게 하면 더 '촌놈'으로 만들까 생각뿐인 것 같다.

공부나 사교육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아이들의 학교생활에 관심이 없는 건 아니다. 아이들 일이라면 '제발 오지 마라'고 해도 달려간다.

바로 '공동육아' 아빠, 엄마들이다.

◆아빠들, 어린이날 마술사 되다

지난달 대구공동육아협동조합 아빠, 엄마들이 모였다. 5월 5일 어린이날에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더 즐겁고 재밌게 해 줄까 고민하기 위해서다. 신매광장에서의 어린이날 행사를 계획하고 있던 대구 수성구주민회, 수성주민광장 등 몇몇 지역 단체로부터 행사를 함께 준비하자는 제안을 받았고 주저 없이 뛰어들었다. 그리고 '아빠표' 마술공연단과 꽃마차, 대동놀이와 체험부스 등을 만들어냈다.

아빠들은 먼저 마술공연단을 구성했다. 아이템 회의하고, 마술용품 구하고, 마술 연습한다고 퇴근 후 저녁 시간과 주말까지 반납했다. 대망의 어린이날.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행사가 열린 수성구 신매광장엔 10여 명의 아빠들이 준비한 마술쇼를 보러 아이들과 부모들이 몰려들었고, 마술 코너가 하나하나 진행될 때마다 폭소와 함성, 박수가 터져 나왔다. 재밌는 복장과 아빠들의 몸짓 하나하나는 공연의 흥을 돋웠다.

손수레를 활용한 '꽃마차'도 인기 폭발이었다. 손수레로 아이들을 태워주자는 '고전' 아이디어는 손수레를 예쁘게 꾸민 '꽃마차'로 다시 태어났고, 이날 행사의 '화룡점정'이 됐다.

공동육아 엄마들이 중심이 돼 마련한 가면, 천연비누 만들기 등 체험부스와 아이들이 장난감, 책 등 자기 물품을 직접 사고팔 수 있도록 마련한 어린이 벼룩시장 부스에도 아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이날 이곳에 참여한 아빠, 엄마들은 어린이날에 아이들에게 장난감 등 선물을 사주지 않고, 또 놀이공원 등에 가지 않고도 준비와 수고로 아이들에게 어린이날을 통째로 선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대구공동육아협동조합 이사장인 해균'수아 아빠(정범철)는 "공동육아조합을 만든 것은 '우리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해서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내 자식, 조합원의 자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며 "그래서 지역 몇몇 단체의 동참 요청을 받고 '어린이날에도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개별적인 선물, 놀러 가는 것 말고 좀 더 의미 있고 생산적이며 지역과 함께하는 일을 하자'며 의견을 모았고 행사에 적극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학교 운동장, 다시 흙으로

최근 고산초등학교는 운동장을 인조잔디에서 흙으로 바꾸기로 잠정 결정했다. 학부모 및 지역 주민 등을 대상으로 한 '인조잔디, 트랙 등 노후화된 시설 교체에 관한 설명회'를 세 차례 연 끝에 2008년 인조잔디를 조성한 지 6년 만에 다시 흙 운동장으로 되돌리기로 했다.

학교가 흙 운동장을 결정하는 데엔 공동육아 엄마, 아빠들의 역할이 적잖았다. 이들은 설명회 때 참석해 "반자연적이고 화학적인 운동장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이 많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고, 인조잔디의 건강'환경 문제 등에 대한 의견도 적극 내놨다.

이들은 운동장 개보수와 관련해 공동육아 부모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공동육아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고, 의견들이 쏟아졌다. 한 엄마는 "폐타이어 인공운동장으로 개보수하는 건 반대다. 한여름 땡볕에 달아있던 그 운동장의 고무냄새를 잊을 수가 없다"는 댓글을 달았고, 또 다른 엄마는 "우리 아이들이 다니고 있고, 또 다니게 될 학교 운동장을 좀 더 나은 환경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아이와 함께 크는 부모들

대구공동육아협동조합 소속의 '어린이집'과 '방과후'엔 당연히 이름이 있다. 4~7세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씩씩한', 초교생 대상의 방과후는 '해바라기'다. 그런데 아이들도, 아빠, 엄마들도 그냥 '터전'이라고 부른다. 아이들을 함께 키우며 함께 생활하는 이곳이 바로 그들의 '삶의 터전'이고 '중심'이기 때문이다. '나'가 아닌 '우리'의 터전이고, 또 이곳을 중심으로 아이들을 함께 키우다 보니 학교 일이나 마을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노력도 아끼지 않는다.

사실 이들의 공동육아 모임은 그 자체로 이미 '작은 마을 공동체'다. 엄마모임과 아빠모임은 기본, 바느질, 안전한 먹거리를 고민하는 '행복생협 마을', 외부 강사를 초청해 강의를 듣고 토론도 하는 '양파 키우기', 교육 문제를 고민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민들레' 모임에다 캠핑 모임, 축구 모임도 있고, 심지어 최근엔 '공뺀'이라는 대구공동육아협동조합 밴드까지 만들었다.

물론 이들도 현대를 살아가는 부모인지라 '공부' '성공' 등 키워드에서 자유롭다고 할 순 없다. 그러나 '잘 크는' 것에 대한 시각은 달리하려 노력한다.

이 때문에 미취학 아이든 초교생 아이든 재촉하지 않고, 사교육을 시키지 않으며 맘껏 뛰놀며 몸과 마음이 건강한 아이들로 자라도록 그냥 바라보고 기다려 준다. 실제 이곳 아이들에겐 동네 뒷산인 천을산이 놀이터고, 동네 놀이터는 안방이다. 매일 천을산으로 산 나들이를 가고, 놀이터를 점령하고 논다. 이들에겐 '아이들 없는 놀이터'란 상상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먼 별나라' 얘기다.

대구공동육아협동조합 홍보이사인 하람 아빠(이상영)는 "비석치기, 딱지치기, 소 타기, 말 타기 하며 멋진 '촌놈'들로 자라나고 있다"며 "산에서 쓰레기 주울 줄 알고, 지렁이를 땅속으로 돌려보내줄 줄 알며, 나무, 꽃잎 하나 이름 부르고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자연과 함께 하는 아이들로 자라나고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감사한다"고 했다.

이호준기자 hoper@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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