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지역의 역사와 자연, 설화 등을 배경으로 한 창작 뮤지컬은 '양날의 검'이다. 서사 구조가 뚜렷한 옛 이야기를 재해석해 화려한 춤과 노래를 덧입힌 창작 뮤지컬은 지역 고유 문화유산의 매력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모든 세대가 함께 즐길 수 있고 문화 공연에 대한 지역민들의 갈증도 풀어줄 수 있다. 종합예술인 뮤지컬의 특성상 다양한 일자리가 생겨나고 지역 축제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효과도 적지 않다.
그러나 창작 뮤지컬 붐의 이면에는 지나치게 비싼 제작비와 낮은 수익성, 부족한 공연 인프라로 인한 작품의 질 저하 등 그늘도 있다. 뮤지컬 제작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해 단발성 이벤트에 그칠 가능성이 크고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지원 없이는 제작 자체가 어려울 정도로 자생력도 낮다. 일자리 창출 등 지역 경제 파급 효과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지역의 역사'문화유산 살리는 최적의 콘텐츠
경북에서 뮤지컬 제작이 가장 활발한 지역은 안동이다. 2009년 전국 최초의 실경 뮤지컬인 '사모'가 첫 무대에 오른 이후 안동의 전통유산과 역사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 작품이 쏟아졌다. 오랜 역사와 이야기가 살아있는 고택이 즐비하고 유교 문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뮤지컬로 제작할 이야깃거리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안동의 고택을 배경으로 뮤지컬 '퇴계연가'(구 '사모')와 '왕의 나라'가 무대에 올랐고, 하회마을과 마주 보고 있는 기암절벽인 부용대는 뮤지컬 '부용지대'의 배경이 됐다. 일제강점기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전통은 뮤지컬 '민족의 여인-락'으로 탈바꿈했다.
안동에서 시작된 뮤지컬 붐은 도내 타지역으로도 이어졌다. 영주시가 단종 복위운동을 다룬 '금성대군'과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의 제작을 지원했고, 고령은 '대가야의 혼 가얏고'를, 경북도민체전을 개최한 김천이 뮤지컬 '징'을 무대에 올렸다. 최근 3년간 경북도와 경북 지역 5개 시'군이 지원한 뮤지컬은 10편 이상이다.
지역 축제와 연계한 뮤지컬은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는 시너지 효과를 거두고 있다.
경북도 관계자는 "창작 뮤지컬은 지역을 알리는 문화 공연 콘텐츠로 관광객을 유치하고 주민들에게 문화 향유 기회를 주는 등 뮤지컬이 지역 관광과 문화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관변 뮤지컬?' 지자체 예산에만 의존
창작 뮤지컬을 무대에 올리려면 수억원의 제작비가 든다. 전문 배우와 연출가, 극작가, 작곡가, 안무가, 무대 제작 전문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수개월 동안 매달려야 하고 무대와 의상, 조명 등 제작비도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지난해 제작된 뮤지컬 '왕의 나라'의 경우 제작비 12억원에 300여 명의 인력이 투입됐다. 뮤지컬 '징'이 6억원이 들었고, '대가야의 혼 가얏고'의 제작비도 3억원이다. '금성대군'(8천만원), '퇴계연가'(5천만원), '민족의 여인-락'(5천만원) 등 소형 뮤지컬도 최소한 5천만원 이상이 들었다.
대구의 뮤지컬업계 관계자는 "배우 및 제작진 등 최소 수십여 명이 매달리기 때문에 인건비가 제작비의 절반을 차지하고, 대형 무대를 제작할 경우 수천만원을 훌쩍 넘는다"고 설명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창작 뮤지컬 제작은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지원에 기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일종의 '관변 뮤지컬'인 셈이다. 그러나 재정 상태가 열악한 지자체들이 매년 거액의 예산을 투입할 수 없기 때문에 4, 5회 공연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작품성이나 수익 창출보다는 지역 홍보를 위한 문화 콘텐츠로 활용하는 데 신경을 쏟기 때문. 일부 지자체의 경우 '주먹구구'식으로 흥행 성적을 조작하는 경우도 생겼다. 지난해 경북 북부지역에서 무대에 오른 작품의 경우 해당 지자체가 공무원들에게 표를 강매해 자리를 채웠다는 구설에 휘말리기도 했다.
지자체들이 막연한 지역경제 파급 효과나 일자리 창출 효과 등을 내세우지만 의구심은 여전하다.
경북의 한 뮤지컬 관계자는 "지역의 뮤지컬 배우들이나 전문 인력의 경우 뮤지컬 한 편을 3, 4개월 동안 연습하고서 3, 4회 공연하고 8개월 가까이 쉬어야 한다"며 "이런 비정기적인 일자리를 제대로 된 일자리 창출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지자체들이 과시를 위해 무턱대고 예산을 쏟아붓는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최현묵 수성아트피아 관장은 "작품성이나 흥행성에 대한 고려 없이 화려한 야외 대형 무대를 고집하는 경우도 있다"며 "각 지자체의 재정 상황에 맞게 초기에는 흥행성을 점검하는 트라이아웃 방식으로 공연을 시작해 점차 규모를 키우는 것이 낫다"고 조언했다.
◆인력 양성 시스템 투자가 먼저
전문가들은 지역 뮤지컬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인력 양성 및 제작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늘어나는 뮤지컬 제작 편수에 비해 공연제작 인프라는 정체돼 있기 때문이다. 뮤지컬에 필요한 연기와 노래, 춤 등 실전 위주의 교육 프로그램과 제작 관련 커리큘럼 등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는 것. 대구경북에서 뮤지컬 전공 과정을 갖춘 대학은 계명대와 대구과학대, 대경대 등 3곳에 불과하다. 윤정인 뮤지컬 음악감독은 "뮤지컬은 다른 장르와 달리 음악이 중요한데 대구경북에는 뮤지컬 전문 음악감독이 거의 없고, 전문 작가도 손에 꼽을 정도여서 장기적인 인력 양성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경북이 상대적으로 뮤지컬 제작 인프라를 갖춘 대구와 활발하게 교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극작가 안희철 씨는 "뮤지컬 제작 편수나 공연 기간 등을 보면 최근 대구가 부산을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북은 이러한 대구와 인접해 있어 뮤지컬 관련 인력이나 제작 시스템 공유 등에 유리하다"고 했다.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경북 각 지역의 뮤지컬을 한데 모아 지원하는 한편, 작품과 연계한 수익원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이종수 중앙대 행정대학원 연구교수는 최근 발표한 '지역문화공연 지불의사와 만족도 사례분석' 연구를 통해 "국제뮤지컬정보센터와 같은 지원 기관을 설립해 지역 뮤지컬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국내외 관광객을 모으는 등 밀착형 지원이 필요하다"며 "지자체들은 관람료 수입보다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기념품과 먹을거리, 숙박시설, 주변 관광지 연계 등 간접 경제 파급 효과를 높이는 데도 신경 써야 한다"고 주문했다.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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