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상백일장] 수필-최선을 다한 꼴찌

박재우(대구 달서구 상인동)

지난 주말에는 그저 생각만 해도 웃음을 짓게 만들고 내가 살아가는 이유를 깨닫게 해주는 딸아이의 유치원 운동회가 있었다. 결혼 3년 만에 어렵게 얻은 딸이어서 흔히 말하는 '딸바보' 아빠로 불혹의 나이에 처음으로 참가하는 운동회였다. 그래서 너무 설레고 종목 하나하나마다 딸아이와 함께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재미있게 보내자고 다짐하고 운동회에 갔다.

현장에 도착하니 분주한 움직임과 생기 넘치는 목소리가 봄나물의 비빔밥처럼 맛깔스럽게 잘 버무려지고 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아빠 달리기 경주가 있어서 평소 태도와 달리 적극적으로 참가하였다.

출발선에 서고 보니 학창시절에 무수한 운동회와 체력장 때마다 섰던 같은 의미의 출발선이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긴장되고 욕심이 나는 출발선이었다. 그래서인지 출발신호가 떨어지자마자 마치 우사인 볼트가 된 것처럼 힘차게 내달렸다.

그런데 중간 즈음에 이르러 다리에 힘이 풀려 허탈하게 그만 앞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나이를 감안하지 않은 과욕이 부른 참사(?)였다. 순간 얼마나 부끄러웠던지 고개를 들지 못할 지경이었지만 그래도 딸아이가 아빠가 열심히 달리는 모습을 보았는지 나중에 확인해 보았더니 못 봤다고 한다. 다행이라고 해야 될지 아쉽다고 해야 될지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번 일은 앞으로 아이를 양육함에 있어서 어떤 태도로 임해야 될지 하나의 명쾌한 답을 줬다는 느낌이다. 그것은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결과적인 면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 그 과정을 중시하는 양육 태도를 견지해야 되겠다는 진리이다.

그런 양육환경에서 성장한다면 딸아이가 앞으로 겪게 될 수많은 어려움, 경쟁 앞에서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최선을 다해 임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분명 결과에 상관없이 스스로 만족감과 행복함을 느끼지 않을까 싶었다.

유치원 운동회 달리기에서는 꼴찌였지만 앞에 남아 있는 이런 숙제는 욕심내지 않고 차근차근 잘 풀어 1등 아빠가 될 것이라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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