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23일 오전 안동과학대학교 평생교육원 강의실. 필리핀 다문화가정 주부 6명이 강사의 물음에 영어로 대답을 하고 있었다. 이어 수강생 한 명이 임시 교사로 교단에 나가 학생들을 직접 가르치는 마이크로티칭(Microteaching) 교육을 실시했다. 교사로 나선 필리핀 다문화여성은 난생처음 접해보는 교사 체험에 어색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필리핀식 영어 발음 때문에 실수가 거듭됐지만 이들의 자세만은 진지했다. 상대방의 실수에 웃음이 터지다가도 정정해주는 강사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예천군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대학을 졸업한 결혼이주여성들을 대상으로 실시 중인 '방과후 초등 영어지도사 양성교육'의 수업 풍경이다. 이날 강의는 오전 9시 30분부터 낮 12시 30분까지 3시간 동안 이어졌다. 수업은 3월부터 5월까지 12주 과정으로 진행된다.
필리핀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13년 전 예천으로 시집온 마리아주시풉라션(42'예천군 호명면) 씨는 아이들 교육비와 각종 생활비 때문에 일자리를 찾던 중 예천군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도움으로 영어지도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남편이 갑자기 간경화로 누운데다 시어머니도 거동이 힘들어 돈을 벌지 않으면 아이 셋을 키울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전 꼭 영어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해야 돼요."
나머지 5명의 필리핀 결혼이주여성들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농사짓는 남편을 따라 시집 온 이들은 아이들 교육비와 각종 생활비 등에 경제적 부담을 느껴 영어강사가 되기 위해 이 교육에 참여했다. 제럴리 팔머(32'예천군 개포면) 씨는 "한동네에 살던 언니가 대구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외로웠는데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소개로 언니, 동생들을 만나 같이 대학도 다니고 취업도 할 수 있다니 정말 좋다"고 했다.
금지은 예천군다문화가족지원센터 팀장은 "필리핀 여성들은 현지 교육열이 높고 어릴 적부터 영어를 배워 발음 부분만 좀 교정하면 영어지도사로 취업이 가능하다"며 "매주 목요일 하루 3시간씩 3개월 동안 이어지는 다소 힘든 일정임에도 결석 한 번 없이 수업을 다 소화해 내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예천군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취업이 어려운 결혼이주여성들을 위한 전문직업교육도 하고 있다. 인터넷을 이용한 '농산물 직거래 사이트 운영 방법'을 비롯해 직업 기초 소양교육, 비즈공예 등 취업교육과 한국어교실, 취미교실, 돌보미사업, 방문교육, 사회적응훈련 등 종류가 다양하다. 특히 최근 급증하고 있는 다문화가정 이혼 문제와 각종 가정불화를 예방하는 교육도 눈길을 끈다. 결혼이주여성보다는 남편이나 시부모 등 가족 구성원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 친밀한 부부'고부'가족관계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는 것. 지난해에는 가정불화로 이혼 직전에 처한 다문화가정 10여 가구의 화해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예천군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 김정옥 수녀는 "최근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다문화가정 여성들의 가출이나 이혼 문제 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상담과 일자리가 가장 중요하다"며 "다문화가정들의 조기 정착을 위한 맞춤형 프로그램을 개발해 보다 안정적인 가정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예천'권오석기자 stone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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