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울서 내려 온 건설 甲 지역 하도급 乙 죽을 맛

가격 후려치기 등 횡포

#.건축용 자재를 납품하는 A업체는 몇 달 전 해외 여행 상품권 5장 수백만어치를 구입해 원청업체에 전달했다. 평소 거래해 온 원청 건설사가 우수사원으로 뽑힌 직원들에게 지급할 포상금을 내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A사 관계자는 "최근 공사가 없어 자금난을 겪고 있지만 원청업체의 요구를 뿌리칠 수 없었다. 잘못 보였다가는 다음 일감을 주지 않기 때문에 해외 여행 상품권 구입은 물론 평소에도 술접대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 수성구에서 오피스텔을 분양한 시행사는 하도급업체에 공사금을 제때 지급하지 않고 공사비 대신 대물로 주기로 했던 오피스텔 등기마저 해주지 않아 최근 고소당했다.

하도급업체 3곳은 창호, 기계설비, 가구 분야에서 건설공사 표준하도급계약을 맺었지만 현금과 대물변제건 등 모두 10억8천여만원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시행사는 대물로 주기로 했던 오피스텔을 신탁회사 앞으로 등기이전을 해버렸다. 관계기사 14면

지역 건설업계에도 서울에 본사를 둔 대기업 및 일부 시행사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갑의 횡포'를 부려 하도급 업체들이 고통받고 있다.

건설 '갑'들은 지속적으로 공사를 따내지 못하면 기업을 유지할 수 없는 건설수주업의 특성상 구조적으로 우월적 지위를 갖게 되는 점을 이용해 하도급 계약 위반, 대물 변제, 해외 연수 비용, 과태료 대납 등으로 하도급 업체들을 쥐어짜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최근에는 건설경기 침체로 공사 물량이 줄어들다 보니 원청업체가 과도한 가격 후려치기를 해도'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따를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표준하도급 계약을 위반하는 사례도 부지기수다. 대한전문건설협회가 지난해 전문건설업체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4곳 중 1곳 꼴로 변형된 계약서식이나 임의로 작성한 계약서를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산업기본법은 하도급업체의 적정 이익과 권리를 보장하는 표준하도급 계약서를 쓰도록 하고 있다.

하도급 계약을 맺을 때 금전이나 물품, 용역 제공 등 부당한 요구를 받았다는 응답도 7.8%에 이르렀다. 앞에선 적정한 공사 금액을 주는 것처럼 해놓고 실제로는 낮은 금액을 지급하는 '이중계약'을 강요받았다는 응답도 9.7%에 달했다.

최근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이 대구전문건설회관에서 가진 전문건설인들과의 간담회에서도 참석자들은 대기업의 불공정 관행과 횡포를 성토했다.

전문건설협회 관계자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후 건설경기가 추락해 대형 건설사들마저 자금난에 빠지면서 현금 대신 어음 지급하기, 단가 후려치기 등 하도급업체 쥐어짜기가 확산되고 있다"고 밝혔다.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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