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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률의 줌인] '마이 라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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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유지태, 이주노동자 이야기로 감독 데뷔 '절반의 성공'

#바른 내용·신인 패기 갖춘 영화 많은 이들로부터 칭찬 쏟아져…발전 기도하며 쓴소리 해볼까

#비참해도 한국서 살아야하나? 동남아보다 좋은 국가 우월감…도와줘야 할 존재로 보지말자

충무로에서 감독이 되는 몇 가지 길이 있다. 가장 흔한 것은 조감독에서 감독으로 데뷔하는 것이고, 시나리오 작가가 데뷔하는 경우도 있다. 흔하지 않지만, 촬영 감독이나 PD가 감독으로 데뷔하기도 한다. 그런데 배우가 감독이 되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 생각해 보라. 감독은 영화 아이디어에서부터 시나리오, 촬영, 후반 작업, 개봉 이후 각종 인터뷰 등에 이르기까지 온전히 한 편의 영화와 시간을 함께해야 하지만, 배우는 촬영하는 동안만 집중했다가 촬영이 끝나면 곧 다른 영화로 이동한다. 이상한 것은 그렇게 하고도 감독 연출료보다 훨씬 많은 액수의 출연료를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떤 인기 배우가 감독이 되려고 하겠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배우 유지태가 감독이 된 것이다. 의문의 여지 없이 유지태는 스타이다. 그가 출연한 영화 가운데 '봄날은 간다' '올드보이'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야수' 등은 한 시대를 풍미한 영화들이다. 이들 영화에서 유지태는 자신의 존재감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그런 그가 감독이 되었다. 단편을 몇 개 만들더니 드디어 장편 데뷔를 한 것인데, 현재 충무로에서 배우에서 감독으로 영역을 넓힌 이는 방은진과 구혜선 정도만 꼽을 수 있다. 이 리스트에 유지태가 당당하게 입성했다.

유지태의 감독 데뷔작 '마이 라띠마'는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신인의 패기도 느껴지는 작품이다. 그런데 한 꺼풀 벗겨 내면 아쉬움도 보인다. 이미 많은 이들이 영화를 칭찬했으니, 그의 영화 세계의 발전을 위해 나는 쓴소리를 좀 하고자 한다.

먼저 스타일적인 면을 보자. 스타 배우 출신이라는 인식 때문인지 카메라의 기교가 화려하다. 물론 이것이 약점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좋은 영화는 화려한 기교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카메라가 이동하거나 움직일 때는 거기에 어울리는 필연적 이유가 존재해야 한다. 이주노동자와 하층민의 삶을 보여주면서 그렇게 화려한 카메라 워킹과 앵글이 필요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게다가 캐릭터와 사건이 아귀를 이루면서 손발이 딱딱 맞아야 하는데 느슨하거나 인과적 연결이 안 되는 경우가 자주 눈에 띈다. 좋은 영화가 되려면 조화를 이루는 캐릭터와 이야기 구조를 정확한 카메라 속에 담아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기본이다. 이 점에서 '마이 라띠마'는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

다음으로 내용을 보자. 흥미롭게도 영화는 이주노동자 이야기를 다루었다. 고백하자면, 이주노동자 이야기만큼 다루기 어려운 소재도 없다. 보수 우파의 입장에서 그들을 몰아내야 한다거나, 인류애적 입장에서 그들이 처한 난폭한 상황을 관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내부를 비판해도 긍정적 평가를 받기는 쉽지 않다. 유지태가 이 어려운 소재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먼저 큰 호감을 지니지 않을 수 없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마이 라띠마'라는 이주노동자를 그리는 영화의 시선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자본이 전혀 없는 남성과, 태국에서 돈 때문에 팔려 시집온 이주노동자 여성의 입장이 다르지 않다고 재현한다. 이런 조건 때문에 이들은 동지적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다고, 그 유대감으로 혹독한 탄압에 맞서야 한다고 한다. 유지태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선택을 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영화 역시 한계를 지닌다. 이곳에 살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남성과 달리 마이 라띠마는 자신의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이 때문에 시아주버니에게 폭행을 당할 때 그녀는 수영이 내민 손을 거절할 수 없었다. 강단 있고 자존심 강한 여성이기에 스스로 아이를 낳아 기르는 그녀도 수영이라는 보잘것없는 인물의 시혜를 받아야 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 말을 다르게 하면, 돈 벌려고 여기에 온 이상 선이든 악이든 이곳의 법칙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선은 대단히 제국주의적이다. 동남아보다 여기가 좋은 곳이라는 우월의식이 내재되어 있으며, 우월한 이곳이 남성으로 재현되고 우월하지 못한 동남아가 여성으로 재현되어 성적인 관계의 폭력으로 환원되게 그려졌다. 그 환원 고리에서 유지태도 빠져나오지 못했다.

혹자는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그 환원 고리에서 벗어난 영화도 있느냐고? 최근 우연히 본 '찡찡막막' 같은 영화가 그러하다. 차별의 시선을 견딜 수 없어 동남아로 돌아가 자아를 되찾는 여성 이주노동자를 그린 이 영화의 진지한 자아성찰이 가슴 깊이 와 닿았다. 왜 우리는 우리나라가 동남아보다 더 좋은 곳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 생각 자체가 폭력적이다. 왜 동남아 여성은 스스로 결정해서 판단하지 못하고 우리가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 역시 지독히도 폭력적이다. 그 환원 고리를 과감히 버리면서 우리 내부를 비판한 '찡찡막막' 같은 영화는, 역설적이게도 만들어진 지 2년이나 지났지만 개봉조차 하지 못했다. 우리의 민얼굴을 보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유지태의 감독 데뷔작은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 나는 그가 방은진의 '용의자 X' 같은 영화를 조만간 만들기를 고대한다. 배우 생활의 경험을 최대한 살려 좋은 영화를 만들기를 기원한다. '마이 라띠마'를 보면서 그 가능성을 발견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같은 배우 출신의 명감독이 우리나라에도 등장할 때가 되었다.

강성률<영화평론가·광운대 교수 rosebud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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