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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웅의 노거수와 사람들] 영월 청령포 관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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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의 한 품고 자란 관음송…어소(御所) 향해 읍하는 자세로

단종을 이야기하려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세조다. 어린 조카를 몰아내고 왕좌를 빼앗은 것도 모자라 수많은 충신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의 과오와 집권의 부당성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있었고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포악한 왕으로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두 그루의 소나무를 남겼으니 직접적으로는 충북 보은의 정이품송(正二品松'천연기념물 제103호)이고, 간접적으로는 영월의 관음송(觀音松'천연기념물 제349호)이다.

전자는 세조가 요양차 속리산을 찾는 길에 갑자기 내린 소나기로 어가(御駕)를 나무 밑으로 옮기려 하자 가지에 걸려 움직일 수 없을 때, '허 가마가 걸렸구나!' 하자 스스로 가지를 들어 올려 비를 피할 수 있게 되자 정이품(正二品)이라는 높은 벼슬을 주었다는 데서 유래한 나무이다. 후자는 단종이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등되어 청령포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그의 비참한 모습을 지켜본 나무다.

청령포는 겉으로 보기에는 우리나라 어느 지역보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가진 곳이다. 그러나 나룻배 등 특별한 교통수단 없이는 내왕이 불가능한 오지 중의 오지이다. 이런 깊은 산골에 단종을 보내 놓고도 안심이 안 된 세조는 금표비를 세워 소요할 수 있는 거리마저 제한했다. 지존의 자리에서 쫓겨나 울분을 삭이며 시간을 보내야 했던 단종은 노산대(魯山臺)에 올라 할아버지 세종으로부터 귀여움을 받던 추억이며, 두 살 위이지만 오누이같이 정답게 지냈던 왕후 생각으로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을 것이다.

단종의 유배생활을 지켜보고(觀), 그의 울분의 소리(音)를 들었다는 관음송(觀音松)을 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장릉(莊陵'단종의 능'사적 제196호)을 먼저 보는 것이 청령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의견에 따라 장릉에 먼저 들렀다. 사약을 받고 강물에 던져진 시신을 삼족이 멸하는 벌을 받을 수 있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호장 엄흥도가 수습해 비밀리에 묻은 곳을 우여곡절 끝에 찾아낸 곳이라고 한다.

그날따라 관광객이 꽤 많았다. 관람을 마치고 적소(謫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짐을 풀고 자리를 잡으니 사약을 가지고 왔던 왕방연의 시비 앞이었다. 강을 건너니 단종이 머물던 곳으로 정비가 잘 되어 있었다.

관심은 관음송이었다. 가지가 둘로 갈라진 부분에 단종이 걸터앉아 울분과 회한, 외로움으로 몸부림칠 때 그를 지켜주고 위로해주었던 나무다. 특히 주변의 많은 소나무 중에서 담 밖의 한 소나무가 단종의 어소(御所)를 향해 읍하는 자세로 자라는 것도 특이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600여 년이 지난 지금 세조의 순행(巡行)길을 도와주었던 정이품송은 가지가 부러지는 등 수난을 당하는 데 비해 단종의 한을 품고 자라는 관음송은 생육이 왕성하고 전형적인 한국 소나무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단종은 유배생활의 소회를 한 편의 시로 남겼다.

'천추의 원한을 가슴 깊이 품은 채/ 적막한 영월 땅 황량한 산속에서/ 만고의 외로운 혼이 홀로 헤매는데/ 푸른 숲은 옛 동산에 우거졌구나/ 고개 위의 소나무는 삼계에 늙었고/ 냇물은 돌에 부딪혀 소란도 하다/ 산이 깊어 맹수도 득실거리니/ 저물기 전에 사립문을 닫노라'라고 했다.

어린 나이에 졸지에 왕의 자리를 내 주고 죄인의 신분으로 맹수들이 우글거리는 적막한 오지에서 물소리와 바람소리를 들으며 외롭게 생활하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잘 그리고 있다.

포악한 세조였지만 나무에 고위직의 벼슬을 주는 아량을 보였다. 또 국립수목원을 있게 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립수목원은 한때 광릉(光陵)수목원으로 불렸던 것처럼 세조의 능원(陵園) 일부다.

조선은 능참봉이라는 직제를 둘 만큼 역대 왕들의 묘역을 잘 지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었듯이 광릉이 있었기에 국립수목원이 들어설 수 있었다. 특히 세조는 자기 묘역의 풀 한 포기도 뽑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을 만큼 유택 보전에 애착을 가졌다고 한다.

대구생명의 숲 운영위원(ljw167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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