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로도토스와의 여행/리샤르드 카푸시친스키 지음'최성은 옮김/크림슨 펴냄
이 책의 저자는 폴란드 출신의 기자이자 르포 작가, 시인으로 평생 낯선 공간, 미지의 세계를 떠돌며 민족과 문화, 종교의 이질성으로 빚어진 소통의 장벽을 허무는 데 생을 바쳤다. 전쟁 관련 이력도 화려하다. 12번의 대규모 전쟁을 취재했는데, 여러 차례 최전방에서 맹활약했다. 그 사이 40번 넘게 체포와 구금을 당했으며, 4번이나 처형당할 뻔했다. 오지 탐험에서도 몇 번 죽을 뻔했다. 에리트레아에서는 전갈에 물려 사경을 헤맸고, 탄자니아에서는 말라리아에 걸렸으며, 밀림에서 코끼리에게 밟히고, 독사에게 물린 적도 있다.
투철한 취재 근성과 전문적인 역사 지식 그리고 시인의 감수성까지 두루 겸비한 저자는 '르포르타주 에세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덕분에 저널리스트로서는 최초로 2005년과 2006년에 노벨문학상 후보에 거론되기도 했다.
저자가 헤로도토스의 '역사'와 처음 만난 것은 기자생활을 시작한 직후 해외로 첫 취재를 떠날 무렵이었다. 이후 그는 해외 특파원이 되어, 2천500년 전 헤로도토스가 그랬듯이 언어도, 지리도, 문화도 낯설기만 한 세계 방방곡곡의 다양한 나라들을 누비게 된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평생 홀로 타지를 떠돌던 카푸시친스키에게 유일한 동반자가 되어 주었다.
이 책에는 2명의 내레이터가 등장한다. 한 명은 주요 장면을 인용하면서, 그 장면이 갖는 의미와 현대사회와의 연관성을 냉철하게 되짚어보는 분석자로서의 저자 자신이다. 또 한 명은 특정한 장소로 파견되어 사건을 취재하고, 인터뷰하는 기자로서의 또 다른 자신이다. 카푸시친스키는 30여 년의 세월 동안 중국과 인도, 이란과 이집트, 그리스, 아프리카 대륙을 오가면서 몸소 체험한 다양하고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을 고대 역사에 빗대 흥미롭게 소개한다. 그리고 말한다. '헤로도토스는 저널리스트의 원조이자 인류 최초의 글로벌리스트'라고.
이 책을 읽게 되면 2천500년 전 헤로도토스의 여정을 함께 따라가 보면서 동시에 20세기 카푸시친스키의 취재여행에 동행하게 된다. 그동안 독자들은 헤로도토스의 페르소나인 카푸시친스키를 만나게 된다. 20세기의 기자가 체험한 다양한 스토리를 기원전 5세기의 역사가가 기술한 문화적 맥락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어느 틈엔가 헤로도토스가 카푸시친스키가 되고, 카푸시친스키가 헤로도토스가 되는 자연스러운 접합점을 만날 수 있다. 헤로도토스의 정신을 이어받은 현대판 제2의 탄생, 헤로도토스가 바로 카푸시친스키다. 불교의 윤회처럼…. 448쪽, 2만5천원.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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