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면에 글을 써오면서 늘 조심해왔다. 행여 글의 내용이 잘못된 사실에 기인하거나 혹은 진실을 왜곡하고 자신의 주장만을 옳다고 외치는 글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늘 글이란 간결하고 쉬운 것이어야만 한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때로는 자신도 모르게 격한 감정에 휘둘려 분노가 묻어나오기도 해서 아직도 이십 대의 감성에 젖어 사느냐는 핀잔에 얼굴이 붉어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지키지 못한 젊은 날의 신념에 영원히 빚을 지고 있다는 부끄러움에 몸을 떨곤 한다.
최근 지인과 스마트폰으로 메시지를 주고받다가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로자 룩셈부르크(이하 로자)를 지인이 '명품을 사랑한 혁명가'라고 표현한 것이다. 젊은 날 그녀의 삶과 죽음을 읽고 진실로 존경과 경외를 가졌던 기억이 떠올라 그만 발끈하고 말았다. 지인은 인터넷에서 본 내용이라고 말했고 대화가 끝나자마자 급히 인터넷을 뒤져 내용을 확인했다. 지인이 말한 그 글의 출처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J신문사의 '불멸의 저자들' 시리즈 중에 로자에 관해 한 대학교수가 쓴 글이었다. 글의 논지는 로자를 정열적인 혁명의 투사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는 내용으로 오히려 그녀의 인간적인 면도 보자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녀가 단순하지만 고급스러운 옷을 선호했고 괴테나 쉴러, 모차르트와 베토벤, 티치아노와 렘브란트를 좋아했다는 점을 부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글의 내용과는 달리 편집자는 그 글에 '레닌주의를 비판하며 명품 옷을 즐겨 입었던 사회주의의 아이돌'이라는 제목을 달아놓고 있었다. 불순한 의도가 그대로 드러나는 편집이었다. 백번 양보해서 편집자가 글을 잘못 읽었다고 하더라도 로자의 삶 자체를 부정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절대 뽑을 수 없는 제목이었다. 글이 어떻게 써지고 어떻게 읽히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였다.
힘없고 가난한 노동자들과 함께 일했던 사람이 단순하고 고급스러운 옷을 입었다고 해서 그것을 명품 옷을 즐겨 입는 사람으로 둔갑시키는 이 편집은 노동자들이 아름다운 음악과 미술을 사랑할 수 없는 존재라고 믿거나 아니면 그것을 사랑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들이 로자를 사회주의의 아이돌이란 말로 폄하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존엄을 모독하는 것이다. '마르크스 이후 가장 뛰어난 두뇌'라 불렸던 로자의 삶과 최후는 대중들의 인기에 연연하는 아이돌로 폄하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녀는 1919년 1월 15일 밤 9시, 독일 파시즘의 시작을 알리는 무장한 군인들에 의해 체포되었다. 그녀는 아무런 법적 절차 없이 이성을 잃은 군인들의 개머리판에 의해 머리가 짓이겨졌다. 그리고 그들에 의해 싸늘한 시신이 되어 란트베르 운하 속으로 던져졌다. 평생을 한결같이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살았고 그들을 위한 세상을 만들려는 불꽃 같은 신념을 무참히 짓밟은 야만의 폭력과 그녀의 삶을 가십거리로 조롱하는 그 언론이 무엇이 다른지 알지 못한다.
'죽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라는 그녀의 무덤 앞에 새겨진 문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역사 속에 사라져버린 이국의 여성을 두고 무슨 논란이냐고 말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세상에는 희망의 역사는 없다'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인터넷을 떠돌던 익명성의 망령은 이제 그 가면마저 벗어 던지고 폭력성을 드러내고 있는 중이다. 지인은 자신이 글을 잘못 읽었다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의도적인 왜곡이 그의 책임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밤늦도록 메르세데스 소사의 노래를 듣고 또 들었다. '고난받는 이들의 어머니'라 불리기에 결코 모자람이 없었던 아르헨티나 민중가수의 노래는 소외받은 사람들의 희망이다. 그런 면에서 그녀는 로자와 닮았고 그녀의 노래는 로자의 신념에 맞닿아 있다. '모든 것이 변하지만 나의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는 그녀의 노래는 비록 그녀는 떠났지만 인종과 언어의 벽을 넘어 세인의 가슴속에 영원히 각인되어 있다. 로자의 육신이 야만의 폭력 앞에 사라졌지만 그녀의 불꽃과도 같았던 인간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우리에게 남아 있듯이….
전태흥 미래TNC 대표사원 62guevar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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