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우린 아파트 관리 분쟁 몰라요"

대구 고산노변타운 자치관리 '작은 일도 투명하게'

14일 대구 수성구 시지동 고산노변타운 관리사무소 앞에서 박영범(왼쪽에서 세 번째) 소장과 입주자 대표들이 정담을 나누고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st.co.kr
14일 대구 수성구 시지동 고산노변타운 관리사무소 앞에서 박영범(왼쪽에서 세 번째) 소장과 입주자 대표들이 정담을 나누고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st.co.kr

아파트 관리 때문에 입주자와 입주자대표, 관리사무소 사이의 갈등이 심각한 요즘, 18년 동안 단 한 번의 큰 분쟁 없이 주민과 입주자대표, 관리사무소가 합심하여 아파트 관리를 해 오고 있는 곳이 있다.

대구 수성구 시지동 고산노변타운은 1996년 8월 입주가 시작된 이후 자치관리를 통해 아파트 관리를 해 오고 있다. 총 885가구가 입주해 살고 있는 이 아파트는 2011년 대구시로부터 공동주택 우수관리단지로 선정되기도 했다. 수성구청 관계자는 "이때까지 고산노변타운에서 아파트 관리 문제로 민원이 들어온 적이 한 번도 없고, 주변에서 아파트 관리가 아주 잘 되고 있는 곳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 아파트가 갈등 없이 아파트 관리를 해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관리에 관련한 작은 일 하나도 투명하게 집행하기 때문이다. 이 아파트는 최근 옥상방수공사를 실시하면서 사업 실시 결정 과정과 사업자 선정 과정 등을 A4용지 16매 분량으로 정리한 보고서를 만들어 각 아파트 라인마다 비치했다. 이 아파트 관리사무소 박영범 소장은 "사업자 선정 과정 중 입주자대표와 관리사무소가 전문가를 초빙해 옥상방수공사에 대한 기초지식을 같이 배웠다"며 "입주자대표회장과 입주자대표, 관리사무소가 옥상방수공사 업체와 시공했던 장소를 직접 방문한 자료도 보고서에 기록했고, 입찰 날짜도 입주자대표회의 회의 날짜와 맞추는 등 최대한 투명하게 절차를 공개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고산노변타운 입주자대표회와 관리사무소는 많은 돈이 들어가는 보수공사는 물론 "수도꼭지가 고장났으니 고쳐달라"는 주민들 수리 신고와 처리 결과까지 꼼꼼히 기록해 공개하고 있다. 또 2년마다 공인회계사를 선정, 회계감사를 받고 그 결과를 아파트 주민들에게 공지해 '돈이 새고 있다'는 의혹을 사전에 차단했다.

고산노변타운 입주자대표 선출 방식은 독특하다. 총 12명의 아파트 입주자대표들은 '이웃집 아저씨 추천제'라는 방식으로 추천받은 뒤 선출된다. 이웃집 아저씨 추천제란 주민들이 자기 동의 입주자대표로 적당한 사람을 추천받아 후보로 만든 다음 선거를 치르는 방식이다. 모집공고 후 자신이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추천 서명을 받아 입후보하는 방식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주민들은 대부분 이웃 주민의 직업적 전문성과 도덕성 등을 고려해 입주자대표 후보를 추천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입주자대표로는 행정공무원, 기계설비 기술자, 회계사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들어와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관리사무소 직원들의 안정된 고용도 안정된 아파트 관리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현재 박영범 관리소장은 이 아파트에서만 7년 넘게 일하고 있으며, 박 소장 이전에 있었던 소장도 10년간 이 아파트의 관리를 맡다 다른 아파트로 옮겼다. 아파트 경비원 33명 중 대부분이 5년 이상 이 아파트에서 일하고 있으며 대부분 정년을 꽉 채우고 물러난다. 게다가 경비원 중 일부를 아파트 경비 업무 수행에 지장이 없는 정도의 장애인으로 채워 장애인 고용의 모범사례가 되고 있다. 아파트에서 배출되는 폐지와 헌 옷 등을 매각한 돈으로 경비 사무실에 에어컨을 설치하고 연말에 우수 경비원을 뽑아 표창과 상금을 주는 등 근무여건 또한 좋게 만들었다.

투명한 예산집행과 다양한 전문지식을 가진 입주자대표들, 관리사무소의 고용 안정은 각 구성원들 사이에 신뢰를 쌓았다. 그래서 입주자대표회의에서 격론이 벌어지더라도 회의 이후에는 뒤끝 없이 마무리된다.

정종렬 입주자대표회장은 "입주자대표들의 양심적인 활동과 입주민들의 신뢰, 관리사무소의 투명한 일 처리가 잘 맞아떨어지다 보니 세간에 떠돌고 있는 아파트 비리는 남의 이야기"라고 했다.

박영범 관리소장은 "일부 아파트의 관리 비리 때문에 양심적인 아파트 관리 주체들이 부정적인 눈초리를 받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며 "관리사무소와 입주자대표, 주민들의 신뢰만 있으면 아파트 비리는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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