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순위를 정할 때 흔히 인구수나 소득을 비교하는데 부동산을 중심으로 한 경제적 측면에서는 서울이, 소득으로는 울산이 전국 최고라고 한다. 그러나 경기침체와 인구구조 변화 및 소득 감소로 부동산불패 신화가 깨지고 있는 지금은 어느 누구도 서울이 마냥 살기 좋은 도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지역내총생산(GRDP), 지역총소득, 개인소득이 모두 독보적인 전국 1위인 '부자도시' 울산 역시 비싼 집값, 공해, 대중교통 불편 등을 감안할 때 서민들이 살기 좋은 도시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는 어렵다.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들이 살기 좋은 도시를 선정할 때 사용하는 가장 일반적인 평가기준은 대중교통의 편리성, 친환경 도시경관, 커뮤니티 발달 정도, 문화수준, 일자리, 주거복지 환경 등을 꼽는다. 이러한 평가기준에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없으나 이보다 현실적인 '살기 좋은 도시'의 정의를 필자가 한다면 망설임 없이 "시민들이 괜찮은 일자리에서 일하며, 지역 내에서 소비하면서, 쾌적한 주거시설이 갖추어진 도시"라고 하겠다. 이런 관점에서 미국 유명 사립대학인 프린스턴대학교가 있는 프린스턴 지역은 괜찮은 일자리와 좋은 학군, 쾌적한 주거환경 및 편리한 교통 등으로 항상 살기 좋은 지역 랭킹에서 상위에 랭크되고 있다.
프린스턴대는 매년 미국 대학순위에서 하버드, 예일 등과 함께 늘 1, 2위를 다투는 명문대다.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은 전체 학생수가 7천300여 명에 불과한데 반해 학교에 근무하는 교직원 및 연구자는 5천300여 명(88%가 정규직)으로 프린스턴시 권역 내에서 가장 큰 고용주라는 점이다. 더 중요한 시사점은 이들 중 86%가 뉴저지주에 거주하고 특히 51%는 프린스턴시 권역인 프린스턴 보러(Borough)와 프리스턴 타운십(Township)에서 살면서 소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프린스턴대는 기부금 수입, 연구보조금, 수업료, 연방정부 연구비 등으로 연간 1조5천억원 이상을 벌어들이고 있다. 이 중 98% 이상이 프린스턴시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데 반해 구성원의 급여와 인센티브, 구매, 건설활동 및 기타 대학사업 등 총지출은 뉴저지주 내에서 사용된다. 연간 프린스턴대 종사자들이 뉴저지주에 내는 세금만도 200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요약하면 프린스턴대는 지역 내 가장 큰 납세자이며 시 재산세의 약 6%를 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학생, 교수, 직원 및 연구원 등 종사자 그리고 방문객들(연간 785천 명)까지 포함하면 연간 2조원 이상을 지출하고 있는 지역 최대의 고용주이자 소비주체다.
프린스턴대의 사례는 살기 좋은 도시 만들기에 대한 대학의 기여와 역할이라는 측면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교육'연구'지식산업분야의 경쟁력 있는 대학이 지역에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고, 이러한 일자리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가족이 함께 지역에 거주하면서 소비할 때 이들에게 학교, 학원, 식당, 도소매업 등 도시서비스를 공급하는 파생 일자리가 생긴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지역 내 소비를 통해 지역대학과 관련 산업으로 구성된 제대로 된 일자리 생태계로 발전하는 선순환적 구조가 형성, 궁극적으로는 지역경쟁력 강화로 이어져 살기 좋은 지역이 되는 것이다. 역으로 아무리 좋은 일자리가 있어도 이들 일자리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그 지역에서 소비하지 않는다면 지역에 파생 일자리가 만들어지지 않아 궁극적으로는 지역경쟁력이 약화되는 악순환이 초래되는 것이다.
살기 좋은 도시 만들기와 관련해 우리 지역의 대학인들은 다음과 같이 자문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비교적 값싸고 쾌적한 주거환경과 우수한 교육도시로 인정받고 있는 대구와 경산에서 지역 대학의 종사자들이 우리 지역에서 거주하면서 소비하고 있는가'이다. 아무리 괜찮은 일자리가 있어도 지역 소비가 일어나지 않으면 파생 일자리가 만들어지지 않아 궁극적으로 지역은 쇠퇴하게 된다. 따라서 프린스턴대의 사례는 지역대학과 대학구성원들이 지역에 대한 자긍심을 1차원적 '말'이나 '정신'에 멈추지 않고 대학 스스로 앞장서 3차원적 '실천' 즉 지역에 거주하면서 소비를 실천하는 것이 최소한의 의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살기 좋은 지역 만들기'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장 주도로 화려하게 진행될 때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대학이 싱크탱크를 넘어 지역 최대의 고용주이자 소비주체가 될 때 앞당겨질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재훈/영남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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