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티누스의 주저 '신국론'은 성염 신부에 의해 라틴어 원문 대역본(분도출판사)으로 2004년에 출간됐다. 이 책에는 90여 쪽에 달하는 역자의 긴 해제가 있으며, 국역 부분이 1천297쪽이나 되는 방대한 책이다.
5현제 이후 로마제국은 서서히 쇠퇴하고 있었다. AD 410년 서고트족의 공격으로 로마는 상당 부분 파괴됐다. 다신교를 신봉하는 로마시민들은 그들이 당한 재앙으로 인해 큰 충격을 받았다. 시민들은 패배의 원인을 진지하게 찾기보다는 재앙의 비참을 치유하기 위해 속죄양을 찾으려 했다. 그들은 재앙의 책임을 그리스도 교도들에게 씌우려 하였다. 신도들이 직면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히포의 주교인 작가는 10여 년에 걸쳐 이 책을 저술했다.
최초의 역사철학서인 '신국론'은 로마제국이 직면한 비극은 그리스도 교도들 때문이 아니라 로마시민들이 가진 다신교 신앙과 한계 없는 지배욕과 탐욕 탓이라고 응수하고 있다. 작가는 신국과 지상국을 대비시키면서 지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짧게 보면, 역사가 인간의 의지에 의해 좌우되는 것 같지만 길게 보면 신의 섭리에 의해 전개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관은 역사를 지배하는 법칙이 있다고 주장하는 신념 즉, 역사주의에 빠질 수 있지만 작가는 신의 섭리와 인간의 자유의지를 절묘하게 조화시키면서 인간사 전반에 걸쳐 독창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작가는 그리스도교의 역사관에 따라 1천여 년의 장구한 역사를 가진 로마왕국, 로마공화국, 로마제국의 역사를 해석하고 있다. 그는 로마시민들이 보여주는 미신, 광신, 그리고 우상숭배가 로마의 국력을 낭비하게 만들고, 인간 덕성의 도야를 소홀하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는 또한 로마에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지식인들 즉 키케로, 소(小) 카토, 바로(Varro), 세네카 등의 행적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비판했다. 철학이 지닌 한계로 인해 이들은 로마시민들을 제대로 지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히포의 주교라는 고위 성직자의 직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면서도, 작가는 짬을 내어 탐구의 열정을 발휘하여 대작을 저술했다. 청년시절부터 보여준 지적 호기심과 그리스도교 신앙이 결합되어 나타난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이 책을 통하여 자신의 신앙을 성장시킬 수 있으며, 비신자들도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설계할 때 고귀한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신득렬 전 계명대 교수 paideia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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