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자하리아스와 박인비

1950년,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가 탄생한 그해에 미국의 베이브 자하리아스(1914~1956)가 당시 3개뿐이던 메이저 대회를 3연속 제패했다. 자하리아스는 당대는 물론 지금까지도 여자 골프 역사에 전설로 남아 있는 선수로 LPGA가 그녀의 인기 때문에 탄생했을 정도였다. 아마추어 골프 대회를 17연속 우승하는 등 필적할 선수가 없었으며 남자 선수들과 함께 겨루는 PGA 대회에서 컷오프를 통과하기도 했다. 게다가 육상, 야구, 농구, 테니스, 복싱, 펜싱, 사격, 사이클, 스케이팅 등 다른 대부분의 스포츠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보여 역사상 운동신경이 가장 뛰어난 여자 선수로 평가받는다.

본명이 밀드리드 엘라 디드릭슨인 자하리아스는 1932년 LA 올림픽에 출전, 창던지기와 80m 허들에서 우승해 2관왕에 올랐다. 다이빙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올 아메리칸 농구팀의 베스트 5로 선정되기도 했다. 어린 시절 야구를 할 때 한 경기에서 다섯 개의 홈런을 쳐 홈런왕 베이브 루스에게서 따온 '베이브'가 별명으로 쓰이다 이름으로 굳어졌고 나중에 프로 레슬러 조지 자하리아스와 결혼, 남편의 성을 따르게 됐다. AP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선수 100명을 선정하면서 그녀를 9위에 올렸는데 10명의 여자 선수 중 그녀가 맨 앞자리를 차지했다.

우리나라의 박인비가 1일 끝난 US 오픈 골프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메이저 대회를 3연속 제패, 63년 만에 자하리아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박인비는 '박세리 키즈' 중 한 명으로 최나연, 신지애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올 들어 혜성과 같이 등장하며 LPGA 무대를 접수했다. 8월에 열리는 브리티시 오픈에서 우승하면 사상 최초로 한 시즌에 4개 메이저대회를 석권하는 그랜드 슬램의 대기록을 세우게 된다. 박세리를 뛰어넘어 오랫동안 골프 여제로 군림했던 아니카 소렌스탐의 아성조차 뒤흔들 기세이다.

박인비는 정교한 퍼팅 능력과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이 두드러진 강점으로 꼽힌다. 박인비의 강인한 플레이는 시즌 그랜드 슬램 달성 가능성을 높여 세계 골프계를 흥분시키고 있다. 그녀의 놀라운 성공이 어떻게 이어질지 지켜보는 것이 큰 즐거움이 되고 있다. 남자 선수들보다 한발 앞서나갔던 한국 여자 스포츠의 저력도 새삼 뒤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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