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순재의 은퇴일기] 남편사용 설명서

아내사용설명서보다 남편사용설명서는 목차도 적고 두껍지 않습니다. 몇 가지 원칙만 잘 지켜주면 기대 이상의 성능을 보이는 것이 바로 남편들입니다. 그만큼 단순하기 때문이지요.

인터넷에 떠도는 남편사용설명서입니다. 잠깐 볼까요.

'제품이 집 밖으로 나갔을 때에는 통신이 두절되거나 회귀 시간이 늦어질 수가 있습니다. 그래도 제품에 회귀 센서가 장착되어 있어 되돌아옵니다. 제품이 스트레스에 민감하니 적절한 양분과 휴식을 취하게 하면 오래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가끔은 연식에 맞지 않은 행동을 할 때가 있으나 그렇다고 제품에 이상이 있는 것이 아니니 안심하고 사용하세요. 고장의 원인으로는 스포츠 뉴스나 경기를 보고 있을 때 질문하거나, 중요한 뉴스를 보고 있을 때 청소기를 작동하면 고장이 날 수 있습니다. 특히 돈타령이나 주말 백화점 쇼핑 제안 등에는 고장률이 치솟습니다. 주의사항 및 알아두면 편리한 사항으로는 급격한 온도 변화로 폭발할 수 있으니 잔소리는 삼가 하시고 화기에 약하니 여자 가까이에는 절대 두지 마세요.'

제법 그럴싸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주 중요한 이야기가 빠졌습니다. 오랫동안 사용한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 '잘한다! 최고다! 멋지다!'는 소리에 기대 이상의 성능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칭찬이 남편을 춤추게 하는 것이지요.

나이 들수록 남편 역시 가족의 지지를 얻고 싶고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남편이 모처럼 가족을 위해 혹은 아내를 위해 무엇인가를 할 때 '당신 최고, 당신 멋져'라며 마음껏 칭찬하십시오. 그리고 잔소리는 되도록 줄이십시오. 잔소리로 수십 년 동안 굳어진 생각이나 태도를 바꾸기란 상당히 어렵습니다. 그냥 '그러려니' 하는 것이 최고이지요.

은퇴자 부인의 이야기입니다. 삼시세끼 밥 차려주는 것도 힘든데 밥상머리에서 잔소리를 늘어놓는 남편을 볼 때면 한방 쥐어박고 싶은 생각이 꿀떡 같다고 합니다. 참는 이유는 스스로 주눅 들어 작아진 남편을 또 기죽여 무엇하겠느냐는 생각 때문이라고 합니다.

측은지심입니다. 정말 미울 때면 측은지심을 발휘하십시오, 서로를 측은하게 바라보는 것만큼 괜찮은 노부부사용설명서는 없을 듯 합니다.

오랫동안 익숙한 내 아내, 내 남편이 최고입니다.

김순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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