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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학의 시와 함께] 여름꽃들-문성해(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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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일이 강퍅하여

우리도 가끔씩 살짝 돌아버릴 때가 있지만

그래서 머릿골 속에 조금 맺힌 꽃봉오리가

새벽달도 뜨기 전에 아주 시들어버리기도 하지만

부용화나 능소화나 목백일홍 같은 것들은

속내 같은 거 우회로 같은 거 은유 같은 거 빌리지 않고

정면으로 핀다

그래 나 미쳤다고 솔직하게 핀다

한바탕 눈이 뒤집어진 게지

심장이 발광하여 피가 역류한 거지

거참, 풍성하다 싶어 만질라치면

꽂은 것들을 몽땅 뽑아버리고 내뺄 것 같은

예측 불허의

파문 같은

폭염 같은

깔깔거림이

작년의 광증이 재발하였다고

파랗게 머리에 용접 불꽃이 인다고

불쑥불쑥 병동을 뛰쳐나온 목젖 속에

소복하게 나방의 분가루가 쌓이는 7월이다

-시집 『아주 친근한 소용돌이』(랜덤하우스, 2007)

7월은 세상에서 드러날 수 있는 것들이란 것들은 거의 모습을 드러낸다. 나무들을 보라. 잎이란 잎은 있는 대로 죄다 쏟아놓고 있다. 도저히 못 견디겠다는 듯이 꽃들마저 마구 토해낸다. 차오르면 넘쳐야 하는 것이 순리다. 아름답다. 생각해보라. 생뚱맞게 배롱나무 한 그루가 꽃을 참고 견딘다면 어떤 모습일까.

우리 삶만 참을성이 많은 것일까. 이 시처럼 머릿속에서 마음속에서만 지고 마는 꽃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 꾸역꾸역 꽃을 게워내는 나무에 괜한 타박을 해보는 것이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

평생 꽃이 피어 있는 나무도, 꽃이 피지 않는 나무도 없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지금 꽃을 피울 수 없다는 것은 머지않아 꽃 피울 날이 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시는 푸념만 같아 보이지만 인생의 꽃을 기다리는 간곡한 마음이 알맹이로 자리 잡고 있다.

시인 artand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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