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성환 교수의 세상보기] 지금 민주당이 위험하다

"아저씨,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금'이 무엇인지 아세요." "누구나 좋아하는 황금, 썩지 않는 소금, 그리고 지금입니다." 조직 폭력배들의 음모와 배신의 세계에서 암살 의뢰를 받은 소녀와 전직 조폭 보스의 사랑을 다룬 영화 에 나오는 대사이다. 이를 정치의 역할에 대입하면 황금은 국민들의 경제적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 소금은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 지금은 국가'사회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에 대한 현재적 결단을 의미한다. 지금 한국 정치는 이 세 가지 모두를 상실하고 있다. 작년 대통령 선거의 단골 메뉴였던 서민을 위한 경제민주화는 지지부진하다. 국정원 선거 개입 의혹 등 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한 부정의에 대해서도 정치는 답을 내놓지 않는다. 경제와 민주주의라는 우리 사회의 두 기둥이 기울어지고 있으나, '지금' 정치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 만난 지인이 지금의 한국 정치는 "시끄러운 빈 수레 같다"고 했다. 빈 수레같이 시끄럽기만 하고 생산적인 것이 없다는 설명이다. 온 나라를 들썩였던 NLL 정쟁은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없다" "찾지 못했다"는 결론으로 허망하게 끝났고, 논란이 되고 있는 국정조사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자조의 말이다. 정치는 국민을 실어 가는 수레이고, 정치인은 그 수레를 끄는 사람이다. 수레꾼에 따라 수레의 방향과 안정감이 달라진다. 지금 국민들은 이 수레를 타는 것조차 거부하고 있다. 국민들이 원하는 방향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치인들은 지금 요란스럽게 빈 수레를 끌고 가고 있다. 야당은 서울광장에 천막을 치고 거리 정치를 선언했고, 여당은 여름휴가 중이다.

정치가 왜 이렇게 시끄러울까.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가 막혀 있기 때문이다. 여당은 국정조사의 본질을 흐리고 뭉개려 한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이 밝혀지면 정권의 정통성이 훼손된다는 우려에서 이다. 여기에서 냉철하게 생각을 해보자. 이제 국정원의 행위에 대한 자료가 나올 만큼 나온 상황에서 수사권이 없는 야당이 국회에서 검찰 이상으로 국정원의 범죄행위를 구체적으로 밝혀낼 수 있을까. 이틀간의 증인과 참고인에 대한 청문회로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설사 밝혀진다고 해도, 그것이 현 정권을 불법화하고 대통령 선거를 다시 실시해야 한다는 데까지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국정원의 '공작'이 선거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지를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안정을 바라는 국민들이 대통령 재선거의 혼란을 감당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들이 재선거를 원치 않는 것은 분명하다. 국가기관이 선거에 개입해서 국민들의 민주적 의사 결정을 왜곡했다면,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자는 것이 모두의 바람이다. 이처럼 국민들이 정권을 보장한다는데 여당이 국정조사를 뭉갤 필요는 없다. 그러면 의혹만 더 키우게 될 것이다. 나아가서 새누리당이 야당이 되었을 경우를 대비해서라도 이 기회에 국가기관의 정치 개입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좋다.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는 10년을 주기로 정권이 교체되어 왔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여당은 긴 안목에서 지금 결단해야 한다.

여당의 행태가 부정의라면 야당은 국민을 대신해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 야당의 존재 이유이다. 무기력한 야당은 독재를 낳는다. 지금 국민들은 싸우려 하지 않는 야당에 분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당의 뭉개기가 야당의 무능과 무기력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없다. 혼란을 막기 위해, 야당은 국정원 국정조사가 대통령 선거에 대한 불복이 아니라 국정원 개혁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확실히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당이 반대하는 국정조사를 진행하기는 어렵다. 국민 여론이 만들어준 국정조사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면 민주당이 입는 피해는 여당보다 더 클 것이다. 민주당 무용론이나 용도 폐기론이 나올지도 모른다. 민주당이 없어져도 안철수 신당이 기다리고 있다고 국민들은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 민주당이 위험하다.

계명대 교수·국경연구소 소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