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괴물 같은 신인 감독이 등장할 때가 있다. 영화판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기성 감독들도 감히 만들지 못할 것 같은 영화를 들고 신인이 등장할 때 비평가는 정말로 행복하다. 그럴 때 비평가가 하는 일은 그저 놀라는 것이다. 너무도 단순하지만, 그 외 다른 방법이 없다. 어떻게 저런 연출력을 신인이 지닐 수 있는지 놀라는 것이 가장 진솔하고 직접적인 반응이다. 그리고 왜 놀랐는지 차분히 분석하게 된다.
허진호 감독이 '8월의 크리스마스'로 등장했을 때, 그 절제의 미학을 보면서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나홍진 감독이 '추격자'를 들고 나왔을 때, 그 어마어마한 스피드와 힘에 어찌 감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장준환 감독이 '지구를 지켜라'를 완성했을 때, 그 풍부한 상상력에 어찌 경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제 이 목록에 한 편의 영화를 추가해야 할 것 같다. 바로 '더 테러 라이브'.
이 영화를 연출한 김병우 감독은 독립 장편을 만든 적은 있지만, 상업 영화를 만든 적은 없다. 그런데 '더 테러 라이브'를 보고 있노라면 과연 신인 감독의 작품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제까지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어마어마한 추진력이 영화 속에 내장되어 있다. 마치 아우토반을 달리는 자동차를 탄 느낌이라고 할까? '추격자'의 그 힘과 속도에도 전혀 달리지 않는다.
이 영화가 놀라운 것은 지독히도 단순한 상황, 그러니까 카메라는 방송 스튜디오 안을 벗어나지 않는 상황에서 촬영했다는 것이다. 스크린에 80% 이상 등장하는 하정우에 기대서만 영화가 진행된다. 어떻게 보면 영화는 스스로 함정을 파놓고 시작한 것이거나, 차'포를 떼고 장기를 두는 것과 같다. 그런데 그 좁디좁은 공간에서만 진행되지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긴장의 끈을 전혀 놓지 못하게 만들어 놓았다. 어떻게 이 단순한 상황으로 이렇게 긴장감을 창조할 수 있었을까? 이 실력은 결코 신인의 것이라고 하기 어렵다.
영화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리듬'이다. 이를 위해서는 캐릭터와 갈등이 사건과 조화롭게 맞물려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좋은 영화는, 초반 설정을 적절하게 조성한 뒤, 곧바로 갈등으로 치달으면서 캐릭터의 성격이 드러나고, 이어 캐릭터가 사건과 결합하면서 강하게 치고 나가야 한다. 마침내 전환점을 지나 기막힌 반전이 있은 뒤, 사건이 마무리되는 엔딩까지 마치 한 편의 오케스트라가 아름다운 교향곡을 연주하듯이 때론 부드럽고, 때론 우아하고, 때론 격렬하게 몰아쳐 나가며 보는 이의 감정을 사로잡아야 한다. 시나리오와 연기, 음악, 편집, 조명 등 영화의 모든 것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야만 이 리듬감을 창조할 수 있다. 영화가 어려운 것은 이 때문이다. 영화의 거장은 대부분 영화의 리듬을 제대로 조율할 줄 아는 이들이다.
사실 '더 테러 라이브'는 그리 정교한 영화가 아니다. 시나리오의 흠을 잡자면 마음껏 비판할 수도 있다. 테러범의 정체가 밝혀지는 반전은 하지 않은 것만 못할 정도이다. 연기가 빼어난 것도 아니다. 하정우가 고군분투하지만, 그의 연기도 다른 영화에 비해 뛰어난 것도 아니고, 다른 배우들은 답답할 지경이다. 그럼에도 이 모든 것을 이겨내고 끝까지 끌고나간다. 상황 상황이 하나씩 맞물려 거대한 그림을 그려가면서도 영화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그 뚝심과 힘에는 인물의 심리를 적절히 담아낸 핸드 헬드 카메라와 빠르게 끊으면서 상황을 조율한 편집의 힘이 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카메라는 그 좁은 스튜디오를 벗어나지 않지만, 그것이 오히려 장점이 되어, 폐소공포증을 불러일으킬 지경이다.
'더 테러 라이브'가 정말로 중요한 것은 이 시대 대중들의 욕망을 제대로 읽어내 영화로 재현했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대단히 정치적이다. 이 영화가 정치적이라는 것은 장르의 규칙을 준수하면서 그 안에 정치적 요소를 삽입해 대중들로 하여금 장르적 쾌감과 정치적 쾌감을 동시에 느끼도록 한다는 데 있다. 영화 안에는 단지 현실 정치에 대한 불신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과 같은 체제를 만들고 있는 언론, 방송, 정치, 계급에 대한 불신이 모두 들어 있다. 그 불신을 한방에 터뜨려 버린다.
그래서 '설국열차'와는 전혀 다른 영화지만, 그 지향점은 비슷해 보인다. '설국열차'가 계급으로 치닫는 이 무한 경쟁의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과감히 뛰쳐나오는 것을 요구한다면, '더 테러 라이브'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게 만드는 지금의 자본주의를 목숨을 던져 자기 손으로 기어이 폭파시켜 버린다. 이런 정치적인 영화가 엄청난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은 지금 대중들이 제대로 된 정치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병든 자본주의를 정치가 고쳐주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런 욕망이 영화를 통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공은 정치권으로 넘어갔다. 과연 여의도는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더 테러 라이브' 같은 반응을 하지 않길 간절히 고대한다.
영화평론가'광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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