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퇴선언 신작 '바람이 분다'
# 로맨스 배경 뒤엔 제국주의 그림자
최근 미야자키 하야오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것은 그의 새 영화 '바람이 분다'가 개봉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이미 그는 지난 7월에 언론의 이슈가 되었다.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발행하는 월간 책자 '열풍' 7월호에서 그는 '헌법을 개정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라는 글을 썼다.
그 글에서 미야자키는 "헌법을 개정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당연합니다"라거나, "'전쟁 전의 일본은 나쁘지 않았다'라고 말하고 싶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나빴습니다. 그것은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위안부 문제도 각각의 민족의 긍지가 걸려있는 문제니만큼, 제대로 사죄하고 제대로 배상해야 합니다"라거나, "오늘날의 세계를 뒤덮고 있는 이 시장중심의 방식은 안 됩니다. 어째서 우리가 세 개에 100엔 하는 바나나를 먹을 수 있습니까? 자국에서는 아무도 만들지 않는 옷을 아무렇지도 않게 입고는 버리고, 이게 이상한 것입니다"라는 주장을 했다.
아베 정권의 우익화와, 과거 일본의 제국주의에 대해서 강하게 비판했고, 현재의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도 강하게 비판했다. 이렇게 보면 그는 영락없는 진보적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그의 영화를 보더라도 그는 진보적 지식인의 이미지를 갖추기에 부족함이 없다. 숲을 배경으로 한 공동체 문화를 옹호하고, 그 안에서 폭력적인 남성보다 사랑을 베푸는 여성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으며, 자연 파괴의 현실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자연을 살리는 환경주의자의 모습도 지니고 있었다.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등 그의 어떤 영화를 보더라도 이런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미야자키 하야오가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신작 '바람이 분다'가 논란이 되니 은퇴를 선언한 것이다. 도대체 어떤 영화이길래 논란이 된 것일까? '바람이 분다'가 논란이 된 것은 이 영화의 주인공이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의 주력기인 제로센을 만든 호리코시 지로이기 때문이다. 호리코시는 전범 기업인 미쓰비시에서 일하며 일본의 강성대국을 꿈꾸는데, 그 수단이 비행기를 만드는 것이었다. 전쟁의 엄청난 피해를 경험한 우리가 보기에 충분히 불편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가 만든 비행기가 결국 가미카제 특공대에 사용되는 것을 보면 어찌 마음이 편할 수 있겠는가?
사실 이 영화의 불편함은 비단 여기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영화의 첫 부분에서 지로가 그의 연인 나호코를 만날 때 마침 관동대지진이 일어난다. 그 폐허의 공포 속에서 지로는 나호코를 집까지 데려다 주며 첫사랑의 씨앗을 뿌린다. 그런데 우리에게 관동대지진은 어떤가? 그 참혹한 조선인 학살의 현실은 전혀 스크린에 등장하지 않고 단지 청춘남녀의 로맨스적 배경이 되어버린다.(지난 9월 1일은 저 참혹한 관동대지진이 발생한 지 9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영화 속에는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욱일승천기도 자랑스럽게 펄럭인다.
이 영화를 보면 미야자키 하야오가 제국주의 시절 일본의 그 엄청난 팽창과, 그 속도로 유럽을 따라가 결국은 압도하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치지 못한다. 사실 뒤돌아보면, 그의 영화에서 제국주의의 그림자를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모노노케 히메'가 대표적이다. 모든 자연에는 정령이 있다는 신도 사상을 그리고 있는 것 같지만, 그 정신의 우익적 팽창화가 곧 군국주의 일본의 탄생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모든 생명에는 각자의 정령이 있고 그 정령이 모여 거대한 숲의 정령이 된다는 것은 곧 모든 생명이 거대한 생명을 위해 죽어야 하는 군국주의 미의식과 맞닿아 있다. 영화에서 사슴신이 쓰러질 때 수없이 많은 하얀 고다마들이 지는 장면은 사쿠라의 지는 꽃잎을 연상시킨다. 이것은 다시 가미카제 특공대의 산화의 모습으로 이어지게 된다. 데이다라보치의 돌격 명령에 무조건적으로 돌격하는 그 수많은 돼지의 무리를 보면 천황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해 자살까지 감행하는 사무라이를 연상하게 된다. 결국 이 영화에서 시시가미는 천황이었고, 고다마들은 천황의 적자인 일본인의 상징이었다. 신도 사상의 파시즘적 시각이 영화에서도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한양대 박규태 교수가 "'숲의 사상이 인류를 구한다'는 발상이 결국은 '신도의 사상이 인류를 구한다'는 일본주의적 주장을 은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주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나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진보적 생각을 지닌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연을 사랑하고 물질 문명을 비판하며, 평등의 공동체를 꿈꿔왔다. 그러나 그도 일본인이 지니고 있는 사상을 무의식적으로 체화한 인물이기에, 그들이 지니고 있는 군국주의적 미의식도 무의식적으로 체화했다. 그래서 군국주의 미의식을 영화 속에 드러냈을 것이며, 그런 정신이 팽창했던 시절을 (무)의식적으로 그리워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군국주의의 강압적 피해를 직접적으로 경험한 나라이니, 그의 영화가 불편하지 않을 수 없다. '바람이 분다'는 내게 무척이나 불편한 영화였다.
강성률<영화평론가·광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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