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장(罷場) -신경림(1936~)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깎고
목로에 앉아 막걸리를 들이켜면
모두들 한결같이 친구 같은 얼굴들
호남의 가뭄 얘기 조합빚 얘기
약장수 기타소리에 발장단을 치다 보면
왜 이렇게 자꾸만 서울이 그리워지나
어디를 들어가 섰다라도 벌일까
주머니를 털어 색싯집에라도 갈까
학교 마당에들 모여 소주에 오징어를 찢다
어느새 긴 여름해도 저물어
고무신 한 켤레 또는 조기 한 마리 들고
달이 환한 마찻길을 절뚝이는 파장
-시집 『農舞』(창비,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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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움이란 대체 무얼까. 시를 평하는 일부 평자들의 입에서 자주 튀어나오는 이 말. 트로트 가수가 힙합을 해야 새로운가. 나이 든 시인이 젊은 시인처럼 써야 새로운가. 대체로 이런 뉘앙스를 풍기는 뜻이라면 '색다름'으로 표현하는 것이 맞지 않나. 그렇다면 다르게 살라는 뜻인가? 천직을 버리고 다른 일거리를 찾아보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내가 아는 인생들은 대체로 한 분야에 모든 에너지를 쏟으며 산다. 인생을 통틀어 하나의 농사를 짓는다. 인생의 참뜻은 새로워지고 달라지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깊이를 더해가고 무르익어가는 데 있다. 새로워지고 달라지는 데서 감동을 받는 것이 아니라 깊이를 더해가는 것을 느낄 때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일수록 쉬 시든다. 겉을 추구하다 보니 깊이를 놓친 것이다. 인생의 깊이를 담은 시는 시들지 않는다. 그야말로 늘 새롭다. 시를 잘 쓰려고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잘 살기 위해서 시를 매만지는 것이다.
인생의 깊이를 담고 있는 명시들은 낡지 않는다. 새로움, 그것은 오래된 이런 시를 읽을 때마다 드는 느낌일 따름이다.
안상학<시인 artand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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