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포항앓이

여행의 즐거움은 일상에서 벗어나 자유로움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여행은 심한 후유증을 남기기도 한다. 홍콩 여행이 그랬다. '언제 또 가지?' 여름휴가차 홍콩 여행을 다녀온 그 이튿날부터 '홍콩앓이'가 시작됐다. 달력을 넘기며 연휴가 언제인지 확인하다 내년 5월 황금연휴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내년 5월의 비행기 티켓팅이 오픈돼 있다면 당장이라도 예매할 기세다. 홍콩 여행은 끝이 났는데도 여행계획을 세우느라 자주 방문했던 포털사이트 카페에 하루에도 몇 번씩 들어간다.

홍콩이라는 도시를 다시 떠올려 보자면 여러 가지 색이 잘 어우러져 있는 맛있는 비빔밥 같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반도와 섬으로 이루어져 있는 천혜의 자연적 요소와 인공적인 관광명소가 잘 조화되어 있다. (자랑거리) 없는 것도 만들어 내는 홍콩사람들의 노력 탓이다. 홍콩섬의 해발 몇 백m의 높이의 빅토리아 피크와 그 산꼭대기까지 운행하는 피크트램, 도심과 거리가 먼 란타우 섬에 조성한 디즈니랜드, 란타우 섬의 해발 400m 가까운 곳에 세워진 뽀우린 사원과 그곳을 연결하는 옹핑 케이블카 등은 홍콩사람들 노력의 산물이다.

홍콩앓이가 끝난 것은 취재차 포항을 방문하고 나서였다. 해도동 형산강 입구부터 송도교에 이르는 길이 1.3㎞의 포항 운하. 2011년 착공해 대부분 작업을 마치고 막바지 공사만 남겨두고 있다. 다음 달 모습을 드러낸다. 이미 대부분 구간은 정비를 마쳤고 시민들의 산책 및 휴식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작은 배를 싣고 있는 바지선, 해양경찰 순시선과 화려한 요트, 이곳저곳에는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강태공의 여유…. 동빈 부두 건너 송도 쪽에는 퇴역한 포항함이 항구를 지키고 있어 또 다른 볼거리다.

엿판 메고 장사하는 소년, 아기를 업고 물고기와 채소를 파는 아낙네, 흥정하는 어머니와 엿을 든 소녀…. 죽도시장 쪽으로 운하를 따라가다 보면 나타나는 '동상거리'는 홍콩이 자랑하는 '스타의 거리' 못잖다.

1960년대까지는 형산강에서 유입되는 강물이 있어서 바닥이 보일 정도 맑은 물이었다. 그러나 포항제철이 들어서고 주택지 등을 위해 형산강 쪽을 매립하면서 물길이 끊기게 되었다. 영일만에서 동빈 내항으로 흘러든 바닷물이 40여 년 동안 갇혀버리는 바람에 썩고 악취가 지독한 내항으로 바뀌고 주민들 사이에도 '똥강'으로 불렸던 곳이다.

그러나 운하건설로 새 생명을 얻게 됐다. 벌써 별천지로 변신 중이었다. 운하개통 후에는 크루즈가 떠다니고 곤돌라 형태의 나룻배도 등장한다. 그뿐인가. 운하를 끼고 수변공원이 조성되고 수상카페, 워터파크, 수변 상가와 같은 각종 볼거리'즐길거리들이 들어선다. 이미 야경은 홍콩과 부산 등지의 야경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동빈 큰 다리에 올라가서 주변을 둘러본 포항운하의 야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홍콩과 포항의 공통점은 천혜 자연환경에 인간의 노력이 더해졌다는 것이다. 대구경북도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 비슬산'낙동강'금호강을 비롯해 팔공산 역시 엄청난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이를 관광자원화하려는 제대로 된 노력은 부족했다. 대구경북 곳곳에 산재한 관광지도 마찬가지. 많은 예산이 투입되고도 결국 붕어빵 관광지로 전락한 경우가 많았다. 대구경북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각개전투 형태로 관광전쟁을 치르다 보니 관광 정책이 대부분 비슷했고 특색있고 개성 있는 관광지를 탄생시키지 못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지역에 '포항앓이'를 끝내줄 또 다른 관광지가 나타나길 고대한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