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중국의 하늘도시 면산…부·권력·해탈 인간 가치를 묻다

면산의 하늘도시. 멀리 하늘다리 천교(天橋)가 보인다.
면산의 하늘도시. 멀리 하늘다리 천교(天橋)가 보인다.
개공사당. 신선이 된 개자추와 어머니를 모신 곳이다
개공사당. 신선이 된 개자추와 어머니를 모신 곳이다
용두사 입구. 얼핏 일반 사찰처럼 보인다.
용두사 입구. 얼핏 일반 사찰처럼 보인다.
용두사 정상 군사 요새. 멀리 드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고 적의 동태를 잘 살필 수 있다.
용두사 정상 군사 요새. 멀리 드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고 적의 동태를 잘 살필 수 있다.

"왜, 인간은 수억 년의 세월이 만들어 낸 심산유곡에 하늘도시를 만들려고 했을까?"

최고 해발 2,566.6m에서 깊이를 알 수 없는 협곡을 내려다보며 트레킹을 하다 보면 자연이 만들어 낸 웅장한 풍경에 감탄사를 던지다가도 인간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중국 산시성 면산(綿山)은 우리에게 개자추(介子推)의 이야기로 잘 알려져 있다. 개자추는 중국 진나라 문공이 18년 동안이나 천하를 떠돌 때 헌신적으로 보필하면서 자기 허벅지 살을 잘라 주군에게 바친 충신이었지만, 진 문공이 왕이 된 뒤 버림받아 어머니와 함께 면산에 숨어 살았다. 뒤늦게 잘못을 깨달은 진 문공이 삼고초려를 했으나 개자추는 끝내 권력을 거부하고, 어머니와 함께 불에 타 죽고 말았다.

개자추의 억울하고 안타까운 죽음이 진 문공의 뜻은 아니었다. 고집을 부리는 개자추를 조정으로 불러내기 위해 면산의 3면에 불을 지르고, 나머지 한쪽에서 기다리다 개자추를 데려오라는 것이 옛 주군의 명령이었다. 개자추의 출사로 자신들의 입지가 약화될 것을 우려한 간신들이 면산을 모조리 불태워 개자추 모자를 죽게 한 것이다. 진 문공이 안타까워하며 개자추가 죽은 날 불을 쓰지 못하게 하여 찬 음식만 먹게 해서 비롯된 것이 한식(寒食)이다.

그러나 개자추는 면산에서 여전히 살아 있었다. 개공사당은 개자추가 죽어 신선이 되었다는 전설이 이곳 일대에서는 신앙처럼 받들어지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예전에 있었던 개공사당을 일제가 훼손하고 파괴했던 것을 최근에 다시 거창하게 확장 복원했다. 이토록 깊은 산골짜기까지 와서 역사적 인물의 유적을 훼손하고, 중국인의 정신을 붕괴시키려 한 일본 제국주의의 악랄함을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일제가 우리나라 명산 곳곳에 민족의 정기를 끊는다며, 쇠말뚝을 박은 것과 유사한 만행을 중국에서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개공사당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올라갈 수 있지만 내려올 땐 웬만하면 서현곡을 이용하기 바란다. 25억 년 전 형성된 천연대협곡인 서현곡은 개자추의 충성, 효도, 깨끗함과 강직함을 상징하는 곳으로 옛 현인들의 수양지로 각광받던 곳이다. 계곡 절벽 바위에 설치된 철제계단과 출렁다리를 이용해 내려오는 길은 아찔하고 스릴이 넘친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일행들 간의 동료애와 협동심이 저절로 생겨난다. 겉보기와는 달리, 내려오면서 점점 편해지는 느낌이 있기는 하지만, 어린이나 노약자는 무리하게 이용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개자추가 어머니와 함께 선경(仙景)을 보았다는 자리에는 중국 최대의 도교사원인 대라궁이 위치해 있다. 13층, 110m 높이 3만㎡ 건물 곳곳에는 인간과 신선 세계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면산에는 불교 유적도 적지 않다. 특히 정과사는 불교신도가 아니더라도 꼭 한 번 들러볼 만하다. 이곳에는 당나라 때 3분, 송나라 때 3분, 금나라 때 1분, 원나라 때 1분 등 모두 8분의 등신불이 모셔져 있다. 운 좋게도(?) 관리인이 탑 안 밀실의 문을 열고, 보존 상태가 가장 좋은 등신불과 각종 사리를 친견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종교를 떠나 평안한 미소를 머금은 등신불은 인간이 삶과 죽음을 초탈할 수도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삶과 죽음, 인생에 대해 성찰의 시간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다.

당나라 때 면산에서 수양하고 성불한 공왕부처님은 바로 운봉사에 모셔져 있다. 당 태종 이세민은 매년 운봉사를 찾았다고 한다. 최고 권력인 황제에 오르기까지 숱한 피를 불렀던 그의 인생을 돌이켜볼 때, 위로와 평안을 찾을 곳은 면산뿐이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당 고조 이연과 당 태종 이세민은 면산과 깊은 인연이 있다. 수나라 말기, 이들은 천하의 패권을 잡을 기회를 엿보기 위해 면산에 용두사를 짓고 병력을 숨겨 두었다. 얼핏 이름만 보면 불교사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위장된 군사요새이다. 대협곡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와 정상에서 흘러내리는 풍부한 물, 그리고 요새 앞에 펼쳐진 넓은 평야는 왜 당나라의 시대가 필연적으로 열릴 수밖에 없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가파른 산길이 부담스러우면 케이블카로 별 어려움 없이 요새 정상 부분까지 오를 수 있어 당 고조와 당 태종의 전략을 음미해 볼 수 있다. 용두사에서 요새 정상 부분까지 트레킹을 할 경우 1시간~1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면산을 배경으로 삼아 천하를 거머쥔 사람은 또 있다. 노예에서 후조 황제가 된 전설적인 인물 석륵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석륵은 기원전 316년 이곳 면산에서 진나라 군대를 패퇴시키고 천하의 패권을 잡았다. 석채(石寨)는 군사를 일으킨 석륵이 면산의 험준한 산세를 이용해 만든 최고의 군사방어시설이다. "동굴에 백만의 하늘군대가 있다"는 말은 이 전투에서 유래됐다. 하늘 위에 세워진 다리라는 뜻으로 이름 붙여진 천교(天橋)는 황제가 된 석륵이 만들었으며, 바닥에서 높이가 300m에 이른다. 속세를 떠나 신선과 부처가 되기 위해 면산으로 숨어든 인물들과는 달리, 당 고조 이연과 당 태종 이세민, 후조황제 석륵은 천하를 차지하기 위해 이곳 면산에 하늘도시를 세운 셈이다.

면산은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협곡을 따라 오솔길로만 신선과 부처, 황제가 된 이들의 발자취를 엿볼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에 변화를 준 사람은 중국 사업가 렌지영. 두부장사로 시작해 부를 축적한 그는 중국 정부로부터 60년간 면산 소유권을 산 뒤, 1998년부터 2008년까지 대대적인 투자를 해 세계적 관광지로 만들었다. 세계 최초의 절벽호텔인 운봉서원은 압권이다. 해발 1,400m 절벽에서 바라보는 하늘과 땅은 마치 사람이 공중에 떠 있는 듯하다.

그런데 면산은 신선, 황제, 부처뿐만 아니라 거부(巨富)와도 인연이 특별하다. 면산에서 자동차로 1시간 30분 남짓 거리에 평요고성(平遙古城)이 있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이곳은 600년 전 명'청시대 건축물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600년 전 은행인 '표호'와 돈을 보관하는 기관인 '전장', 그리고 무림의 고수들이 산적들로부터 상품을 보호하기 위해 세운 '표국'(현대의 운송회사)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중국의 4대 대원(大院:대저택)인 왕가대원, 교가대원, 조가대원, 장가대원이 모두 산시성에 위치한 것만 봐도 당시 이 지역의 부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 대원인 왕가대원(王家大院)이 바로 면산을 마주 보고 있다. 민간의 자금성(紫禁城)이라 불리는 왕가대원은 전체 면적 25만㎡, 건축 면적 4만5천㎡, 정원을 뜻하는 원락(院落) 123개, 방 1천118칸이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외형과 규모에만 넋을 빼앗길 것이 아니라, 각종 조각 장식에 새겨진 '효'와 '겸양', '성실'의 가르침에 더욱 주목해야할 것 같다. 명나라부터 청조 말기까지 이어진 왕 씨의 부와 영광은 바로 이 정신에서 비롯되었다.

면산 트레킹의 가장 큰 매력은 대자연의 풍경을 감상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곳에는 부와 권력, 해탈에 이르는 정신적 완성까지 인간의 모든 가치가 담겨 있다.

중국 산시성 면산에서 석민기자 sukm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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