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찰서 합동차례 모셔요"…추석 대행업 전성시대

차례상·벌초 이어…동화사 올 40여 건 접수, 염매시장에도 주문 몰려

주부 강모(50'대구 동구 방촌동) 씨는 올해 추석 차례를 인근 사찰에서 지내기로 했다. 딸만 둘 있는 집안이라 지난해만 해도 딸의 도움으로 차례 음식 준비가 수월했지만 올해 둘째 딸을 시집보낸 뒤 혼자 차례상에 올릴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 씨는 "차례 때 친척들이 그다지 많이 오지 않는 데다 남들처럼 며느리와 함께 준비할 수도 없어서 결국 신위만 모셔서 가까운 절에 가서 차례를 지내기로 합의를 봤다"고 말했다.

추석이 다가오면서 차례를 준비하기 힘든 사람들을 위한 '추석 대행업'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사찰과 성당은 합동제례를 지내주고 있으며, 차례 음식 제조업체와 벌초대행업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매년 늘고 있다.

추석 때 여행을 가는 등 차례상을 마련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사찰에서 합동차례를 지내거나 성당에서 조상들을 위해 진행하는 미사에 참가해 마음의 짐을 더는 경우도 있다.

동화사에 따르면 이번 추석 때 40건 이상의 합동차례 접수를 받았다. 추석 당일 11시 20분쯤 아침 예불이 끝나면 차례상을 준비해 접수된 가족들이 가져온 위패를 모셔놓고 차례를 지내게 된다. 차례 지내기가 어려운 신도들은 종무실을 통하거나 전화를 통해 합동차례에 참가한다. 10만원 정도의 접수비용만 들이면 절에서 차례를 지낼 수 있다. 동화사 관계자는 "명절 합동 차례는 예전부터 각 사찰에서 조상들을 기리는 목적으로 해 오던 것"이라며 "'차례 대행'이라고 보기에는 어폐가 있다"고 말했다.

차례상 마련 대행은 여전히 높은 인기를 자랑한다. 대구 중구 염매시장과 떡전골목 주변의 10곳이 넘는 차례상 마련 대행업체들에 따르면 14만~30만원의 가격으로 차례상을 마련할 수 있다. 염매시장의 한 차례상 마련 대행업체는 "1주일 전부터 주문이 몰려들고 있다"며 "추석 당일에도 차례상에 올릴 음식을 미처 만들지 못한 분들이 전화가 오기도 해서 추석날 아침까지 바쁘다"고 말했다.

각 지역 단위농협에서 실시하는 벌초 대행 신청도 인기다. 농협 경북지역본부에 따르면 벌초대행 서비스를 이용한 묘소의 숫자는 해마다 늘어 2009년 3천140기이던 것이 2010년 3천728기, 2011년 4천957기, 지난해는 5천11기로 증가했다. 대부분 추석 전 벌초 일정을 맞추지 못해 해당 지역 농협에 전화로 신청하는 경우가 많다. 농협 경북지역본부 관계자는 "아직 정확한 통계는 나오지 않았지만 올해 또한 지난해보다 많은 분들이 농협의 벌초대행 서비스를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처럼 차례 대행은 갈수록 인기를 끌고 있지만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계명대 김중순 교수(한국문화정보학과)는 "차례의 형식과 절차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왜 차례를 지내는가'에 대한 고민"이라며 "차례 대행 문화를 탓하거나 안타까워하기 전에 차례를 지내는 의미를 우리 모두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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