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맛 향토음식의 산업화] 통영 멍게비빔밥…통영 바다가 입으로 쏙∼

쌉쌀하고 달콤한 멍게의 맛, 새싹나물·해조류도 혀에 착착

통영식도락 멍게비빔밥 전문점 정은숙(43) 씨가 갓 지은 밥 위에 새싹나물과 해조류와 함께 다진 멍게를 얹은 멍게비빔밥(덮밥)을 보여주고 있다.
통영식도락 멍게비빔밥 전문점 정은숙(43) 씨가 갓 지은 밥 위에 새싹나물과 해조류와 함께 다진 멍게를 얹은 멍게비빔밥(덮밥)을 보여주고 있다.
꼴뚜기젓갈, 오만디자반, 박나물, 오만디무생채 등 밑반찬과 함께 차린 통영 멍게비빔밥 한상차림이다. 먼저 생멸치무침회로 입가심을 한후 멍게비빔밥을 비벼먹고, 그리고 통영해물찜을 안주삼아 반주를 하는 것이 멍게비빔밥의 정식 코스이다.
꼴뚜기젓갈, 오만디자반, 박나물, 오만디무생채 등 밑반찬과 함께 차린 통영 멍게비빔밥 한상차림이다. 먼저 생멸치무침회로 입가심을 한후 멍게비빔밥을 비벼먹고, 그리고 통영해물찜을 안주삼아 반주를 하는 것이 멍게비빔밥의 정식 코스이다.

통영이라 하면 먼저 멸치를 떠올린다. 국내산 멸치 유통의 거점이기 때문이다. 특히 술안주로 기막힌 생멸치무침회는 전국의 식도락가를 유혹한다. 굴 생산량도 적지 않다. 생굴회와 굴국밥도 유명하다. 고속도로 휴게소 등 전국 어디서나 맛볼 수 있는 국민도시락 충무김밥도 바로 통영의 향토음식이다. 달콤한 통영꿀빵도 오래된 특산품이다. 고구마를 말려서 가루를 내고 이를 물에 풀어서 쑨 빼떼기죽도 눈길을 끄는 토속음식. 호박죽과 팥칼국수도 아주 독특하고 별스럽다. 통영문화마당을 꾸며 둔 통영항 강구안은 이런 통영 향토음식을 4천~5천원이면 골라 먹을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 요즘엔 멍게비빔밥으로 통영이 유명세를 떨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젓가락으로 비벼야 하는 멍게비빔밥

거북선 3척과 판옥선이 실물 크기로 복원된 통영문화마당에서 만난 통영 향토미식가 박구일(32'회사원) 씨가 "줄을 서야 겨우 자리를 얻을 수 있는 유명한 멍게비빔밥 집이 있으니 따라 오라"며 안내했다. 통영문화마당을 지나 큰길을 따라 가다 KB국민은행 통영지점 골목으로 들어간다. 50m 정도 걸으면'통영식도락'이라는 간판이 붙은 해산물전문식당이 나타났다. 120여㎡ 규모의 크지 않은 식당이다. 여느 유명 맛집처럼 벽면에 신문방송 보도사례가 자랑스럽게 걸려 있다.

"어서 오이소." 이 집 사장의 모친인 장미라(61) 씨와 조카들이 나와 이구동성으로 인사를 한다. "아지매. 얼른 손님 안으로 모셔래이." 경남 특유의 높은 억양이 식당 안을 시끌벅적 가득 메웠다."멍게비빔밥 준비할 동안 우선 생멸치무침회부터 먹어 보이소. 기가 막힐낍니더." 한참 메뉴판을 보고 있는데 다짜고짜 멸치회를 권했다. 당당한 자세를 보니 맛은 자신만만한 모양. '제대로 찾아 왔구나' 싶다.

머리를 떼고 뼈를 발라낸 생멸치 살을 미나리와 당근채에다 초고추장으로 조물조물 버무려 낸 생멸치무침회는 술안주 감으로 더할 나위 없다. 한 점을 집어 입 안에 넣으니 달다. 늦은 저녁 시간인데도 빈자리가 없을 만치 손님들로 꽉 찼다. 그런데 손님들이 떠드는 것보다 종업원들의 투박한 사투리가 더 분주한 것 같다.

멍게비빔밥은 생멍게를 다져서 갓 지은 밥 위에 얹고 새싹나물과 해조류를 비빔나물 재료로 쓴다. 서실, 석모, 까시래기 등 통영사람만 알 듯한 이름의 해조류를 손꼽으며 철 따라 나는 해초를 듬뿍 쓴다고 자랑한다. 멍게는 통영산만 쓴단다. 다진 멍게에 뿌리는 소스는 멍게를 발효시켜 만드는 데, 진한 멍게 향과 감칠맛을 내는 이 집만의 비법이다.

숟가락을 들고 비비려 드니 장 씨의 질녀인 정은숙(43) 씨가 갑자기 손사래를 치며 막는다. "젓가락으로 비벼야 돼요." 멍게가 차져서 젓가락으로 비벼야 달라붙지 않고 잘 비벼진단다. 잘 비빈 멍게비빔밥을 한입 떠 넣으니 향긋하고도 쌉쌀한 멍게 향이 가득 퍼진다. 여린 새싹나물과 부드러운 해조류도 혀에 착 감긴다. 젓가락으로 비빔밥을 떠도 될 정도로 차지다. 멍게 특유의 향이 진하게 배어난다. 들깨기름을 둘러 고소하다. 밥인데도 술 생각이 절로 난다.

◆밑반찬 하나하나에도 통영 해물 맛

"요거도 한번 먹어 보이소." 상 옆에 찰싹 붙어 있던 정 씨는 "'오만디 자반'인데 먹어 보라"했다. 미더덕과 사촌 간인 오만디에다 산초가루를 넣어 버무렸다. 오만디 특유의 향과 잘 어울린다. 생전 처음 먹어 보지만 오도독 씹히는 식감이 괜찮다. 이곳은 해산물이 풍부해 반찬마다 해산물이 안 들어 간 게 없다. 박나물에도 삶은 홍합을 다져 넣어 맛의 깊이를 더했다. 무생채에도 오만디를 넣어 상큼하게 초무침을 했다. 미역국엔 조개를 넣어 시원하게 끓여 냈고, 멸치와 함께 우엉볶음을 만들었다. 밑반찬 하나하나에 통영식 해물 맛을 내기 위해 정성을 다한 흔적이 역력하다.

"일주일에 멍게 100㎏ 정도는 쓰지요. 멍게는 봄철에 더 맛있어요." 정 씨는 "3~6월 사이에는 멍게가 살이 올라 통통하고 더 맛있지만 손님들은 여름철에 몰려 아쉽다"고 했다. 굴은 겨울철 음식이고 성게는 지금부터 겨울까지가 제철이다.

1인분에 1만원씩하는 멍게비빔밥과 생멸치무침회 이외에도 왕꼬막무침과 굴해초비빔밥, 굴전, 생굴무침, 굴 두루치기, 해물뚝배기, 해물두루치기, 성게돌솥비빔밥, 참가자미쑥찜, 바다메기찜 등 메뉴가 다양하다. 특히 도다리쑥찜은 봄철 계절메뉴로 손꼽히는 별미다. "우리집 특미를 맛보고 가야지요." 자리에서 일어설 즈음 주방을 지키고 있던 김숙희(45) 씨가 푸짐한 해물뚝배기를 들고 온다. 홍합은 기본이고 오만디, 딱새, 피조개, 꽃게, 가리비, 주꾸미, 게조개, 삐뚜리, 고동, 참소라 등 10여 가지 해물이 들어 가 보기에도 군침이 돈다.

식당을 한 지 40여년 됐다는 주인장 씨는 "오후 8시 무렵이면 준비한 재료가 떨어져 영업을 마칠 준비를 한다"고 했다. 전국 미식가들이 찾는 맛집치고는 식당이 비좁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리는 경우엔 이웃집인 해산물 전문 '통영맛집'을 권한다고 한다. 이 집도 겨울에 잡은 도다리와 물메기, 참가자미를 잘 말려 사용하는 생선찌개 맛이 기막히다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장 씨는 남의 집 맛 자랑을 해 주는 인심도 좋다. 마음이 여유로운 전형적인 통영사람이다.

◆산업화 가치 높은 통영 멍게비빔밥

멍게비빔밥의 주재료인 멍게는 예부터 식용으로 사용했지만 전국적인 먹거리가 된 것은 6'25전쟁 이후로 알려져 있다. 보통 회로 초고추장을 찍어 먹는 데 비빔밥으로 개발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특히 멍게 특유의 쌉쌀하고 달달한 맛을 내는 성분인 불포화알코올인 신티올(cynthiol)이 인슐린 분비를 촉진해 당뇨병 예방과 숙취를 해소하는 데 탁월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화를 방지하는 타우린도 함량도 높고 에너지원인 글리코겐의 함량도 약 11.6%로 다른 해산물에 비해 많은 편이다.

멍게비빔밥의 산업화 가치는 비교적 높게 평가된다. 멍게의 냉동포장과 전국 유통망만 확보되면 생산량이 많고 가격도 저렴해 원료 확보가 손쉬운 것이 장점이다. 지방질이 적어 해삼과 해파리와 함께 저칼로리 해산물로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손색이 없다. 당뇨병 등 성인병 예방과 여성들의 머릿결을 부드럽게 한다는 약리작용도 있어 외식 프랜차이즈 소재로 알맞다. 특히 요즘처럼 일본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괴담에도 멍게는 국내 연안산이어서 방사능 오염과는 거리가 먼 데다가 미역, 다시마처럼 방사능 피해를 막아주는 요오드(I)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 상대적인 강점으로 부각된다.

다양한 향토 음식이 잘 발달된 통영은 서정주, 김동리와 함께한 시대를 읊조린 시인 유치환과 예술원 회원으로서 경북대 교수를 지낸 김춘수 전 한국시인협회장의 고향이다. 통영국제음악제의 모태가 된 윤이상의 고향이기도 하고, 인촌상과 한국여류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박경리는 통영의 향토 음식과 아름다운 정경을 토대로 파시와 못 떠나는 배, 김약국의 딸들 등 불후의 명작을 낳았다. 그 외에도 수많은 문예인들을 낳은 통영은 그야말로 한국 문학'예술의 메카이다. 따라서 멍게비빔밥을 소재로 문학, 전통예술을 가미한 스토리텔링 상품기획을 창의적으로 구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 향토 음식 산업화 가능성에 주목된다.

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사진작가 차종학 cym478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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