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좋은생각 행복편지] 언어 유감(遺憾)

2010년 미국에서 3년 만에 돌아왔을 때입니다. 한참 우리나라에서 소통이란 단어가 유행처럼 쓰이고 있었습니다.

소통이란 건 좋은 말이고, 필요한 것이니 우리나라도 좋아졌구나 생각했지요. 그런데 제법 이 단어에 익숙해질 때쯤 누군가 제게 소통하라고 하면서 말을 아끼라고 하더군요. 소통의 기본은 많은 대화를 통해 뜻을 충분히 교환하는 것인데도 말입니다. '아! 이 사람은 단어 뜻을 모르는구나'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단어가 왜곡되어 본래의 뜻은 어디 가버리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저 관념적 표현으로 자리 잡혀 있는 걸 알게 되었지요.

많은 사람들이 소통을 얘기하지만, 진실된 소통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지요. 그 이후로 마음속으로는 언어의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밖으로는 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본래부터 직설적 화법이 제 버릇인데, 나이가 좀 들었다고 상대방이 행여나 오해할까 무척이나 조심하긴 하지만 그 버릇이 어디 가겠습니까?

요즘 우리나라 기조 중의 하나가 창조경제이지 않습니까? 이게 좀 묘한 면이 있지 않나 생각을 해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창조경제'를 다른 말로 하면 '경제를 창조한다'이고, 경제를 산업에 국한해서 말하면 '산업을 창조한다'의 뜻이 되는데 그럼 '산업혁명'만 일어나면 완벽하게 된다는 조금은 엉뚱한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개념상 '지금보다는 다른 생각'(Think different and/or Think new)으로 접근해야 더 맞지 않나 생각을 해 봅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런 생각들이 생뚱맞을 수도 있고 상식에 부합하는 아이디어가 아닐 수도 있겠지요. 기존의 생각과 관념에 의해서 판단되니까 비난(?)과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쓸데없는 짓을 한다'거나 '자기 일이나 잘하지' 등등 힐난을 받게 되는 걸 보면 말입니다.

다른 예를 한 번 들어 보겠습니다. 우리나라 속담 중에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날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인가요? 원숭이가 얼마나 나무를 잘 타면 나무에서 떨어지는 게 사건(?)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전문가라면 모름지기 이래야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본래 제아무리 전문가라도 원숭이 나무 타기 정도면 전문가 중의 전문가 아니겠어요? 그런데 우리는 가끔 본래의 뜻은 잊어버리고 나쁜 뜻으로 쓰이는 게 유감입니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말도 그런 말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속담들이 적나라하게 말해 주는 것은 우리 인간의 사는 방식이 아닐까 합니다. 어떠한 정보라도 여럿을 종합해서 판단해야 사실에 가까운 정보가 된다는 뜻이지요. 무슨 일이든 이렇게 여러 각도에서 다양하게 보고 생각을 해야 비로소 정확하게 알게 되니까요.

우리가 가끔 하는'복심'이라는 말도 사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말이지요. 특히 고위직의 참모가 이러면 일을 망치는 경우도 있지 싶어서 하는 말입니다. 어디까지나 심증이 있더라도 말을 해서 정확히 확인해야지 '복심' 또는 '심중을 헤아려서' 이렇게 대응하는 것은 얼토당토않은 것이란 말입니다. 부처님의 최고 제자인 가섭이 부처님 말씀을 이런 식으로 이해하면 모를까요.

제 경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미국에서 살 때 한국 교민들이 주말 점심에 우리 집에 들르는 일이 가끔 있었지요. 그때마다 저는 라면을 맛있게 끓여서 대접을 하면 모두들 "아주 맛있다"고 했습니다. 김치를 송송 썰어서 물에 먼저 익히고서 감자를 감자칩처럼 얇게 잘라서 살짝 익힌 다음 라면을 넣고 적당한 불에 약 4분간 끓이면 별난 맛을 가진 라면이 완성됩니다. 그런데 언뜻 소문에 '맛없었다'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저는 이렇게 전후가 틀리는 사람은 솔직히 별로이더군요. 직설적으로 말하기 곤란하면 적당히 둘러대던가 아니면 말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네요.

제가 드리고자 하는 말씀은 항상 이렇게는 되지 않겠지만 가능한 한 본심을 제대로 말해서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본인이나 다른 사람의 작은 행복에 상처를 입히지 않게 될 것이니까요.

그리스 신화 이야기를 해 봅니다. 헤라클레스가 죽게 되는 사연입니다. 헤라클레스가 전쟁에서 승리하여 아리따운 미녀를 얻게 되고, 승리의 영광을 아버지인 제우스에게 올리기 위해 제를 지내게 됩니다. 제를 지내기에 앞서 전령에게 제례복을 부인으로부터 가져오게 하지요. 그런데 이 전령이 시킨 대로 하지 않고 자기가 느끼는 대로, 생각되는 대로 부인에게 이야기를 하게 되지요. 부인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당했다고 생각하고 입으면 독이 퍼져 죽게 되는 옷을 보내게 됩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헤라클레스는 그 전령을 죽이고 본인이 직접 장작더미를 만들어 스스로 화장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헤라 여신이 헤라클레스의 장대한 인간 종말을 보고 나서 모든 것을 용서하고 자기 딸(헤배'Heba)을 주어 사위로 삼고 최초로 인간으로서 신이 되게 합니다. 인간의 말이 얼마나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이야기이며 교훈이지요.

송인섭/대구테크노파크원장 insopsong@ttp.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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