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의정원의 개편으로 이동녕과 심산이 의장 부의장으로 추대돼 군소당파를 없애고 대동통일을 꿈꿀 때였다. 의정원에서 여러차례 비밀회의를 열어 국내외에 연락할 방안을 모색했다. 극비회의였다. 그러나 비밀리에 열린 회의 내용이 상해의 일본인 신문에 낱낱이 보도됐다. 상해동포들 사이에서는 의정원에 일본의 밀정이 있어 누설한 게 틀림없다고 야단이었다. 의원들도 서로 의심하는 분위기였다. 백범과 심산은 여운형을 지목했다. 여운형이 일본 정부가 특파한 밀정이자 공산당원인 아오키란 자와 상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백범이 여운형에게 '아오키가 일본의 밀정임을 아느냐'고 물었다. 여운형은 이미 알고 있다고 답했다. 아오키를 통해서 일본 정부의 정보를 얻으려 알면서도 만난 것이라고 했다. 백범은 실소했다. 아오키를 매수하여 정보를 캐내기보다 먼저 여운형이 매수되리라 생각한 것이다. 백범은 의정원에 보고했다. 의정원은 여운형에게 차후 아오키를 만나지 말 것을 경고했다.
그러나 여운형은 아오키와의 만남을 멈추지 않았다. 의정원에서 난리가 났다. 격분한 의원들은 일본의 밀정이 아니냐며 고함쳤다. 의정원 특별회의에서 여운형은 비밀을 누설한 것을 자복했다. 이번에도 일본 정부의 비밀을 얻어내기 위해서였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 일이 있은 후 여운형은 일본의 밀정으로 지목됐다. 당시 상해에서 활동 중인 의혈 청년들의 암살 표적이 됐다. 여운형은 숨어서 나오지 못했다. 이동녕과 백범이 여운형을 변호했다. 죄는 크지만 여운형을 일본 밀정으로 지목하여 죽인다면 지나치다는 것이었다. 심산도 동의했다. 여운형이 호사가인데다 수단을 가리지 않다보니 아오키를 만나고 또 내부 기밀을 전했겠지만 일본밀정으로 몰아 죽인다면 억울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백범이 나서서 총을 지닌 의혈 청년들에게 경거망동 말라며 설득했다. 몇 달 뒤 통일독립당의 조직규약이 통과돼 당원을 모집했다. 당원이 되려면 보증인 3명이 필요했다. 누군가가 여운형을 추천했다. 심산은 반대했다. 일본 밀정이 아님은 보증했지만 같이 일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를 들었다.
뒷날 해방정국에서 여운형이 박헌영 등 공산당원들과 비밀회의를 열어 조선인민공화국 창립을 선언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심산은 "정권을 잡기 위해 국민을 기만한 죄는 죽임을 당해도 싸다"고 비난했다. 독립조국의 건설에는 민족의 단결이 급선무라고 믿은 심산에게 몇 사람이 비밀리에 모여 정부 수립을 선포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서영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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