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정기국회가 근 한 달째 파행을 겪고 있는 가운데 '국회선진화법' 위헌 논란이 불거지면서 여야 대치 정국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식물국회'를 만드는 악법인 만큼 손을 보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민주당은 여야 합의로 불과 1년 전에 만든 법을 마음대로 주무르겠다는 행태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이를 두고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국회선진화법 위헌 주장에 대한 반대 의견이 나오는데다, 자신들이 만든 법을 1년 만에 마음에 안 든다고 수정하려는 등 자가당착(自家撞着)에 빠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위헌 논란
새누리당 원내지도부는 국회선진화법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보고 있다. 홍지만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국회선진화법은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포함돼 있는 다수결의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며 "한 표만 더 얻어도 대통령이 되고 다수당이 되는데 국회선진화법은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 식물국회법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여야 이견이 있는 법안을 본회의에 상정할 때 국회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을 명시한 국회선진화법 조항은 과반 출석과 과반 찬성을 본회의 의결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제49조에 위배된다"고 강조했다.
이에 새누리당은 당내 율사 출신 의원들로 '국회선진화법(국회법) 정상화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26일 첫 회의를 열어 국회선진화법 위헌성 여부에 대한 검토 작업에 착수했다. TF 팀장을 맡은 주호영 새누리당 대구시당위원장은 "국회선진화법이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국내 헌법학자들도 있는 만큼 다각적인 의견 수렴 및 심의 절차를 거쳐 위헌 여부를 가리겠다"면서 "또 이와는 별개로 몸싸움은 방지하면서도 법률안을 신속히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해 '식물국회'가 되는 사태를 방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위헌이 아니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황우여 당대표를 비롯해 당시 국회선진화법 발의에 앞장섰던 의원들이 중심이다. 남경필 의원은 최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대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은 국회선진화법의 위헌 소지를 얘기하기에는 좀 미약하다는 것"이라며, "다수결의 원칙을 담은 헌법 규정은 법률에 특별히 규정되지 않았을 경우라고 단서조항을 달았다. 그러나 국회선진화법에 법률적 근거가 있다"고 지적했다. 황영철 의원도 "1년 전 여야가 대화와 타협의 산물로 만들어 낸 아주 소중한 가치가 있는 법"이라면서 "헌법재판소에서 위헌판결을 받기도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위헌 논란을 일축했다.
◆국회선진화법이 뭐기에
국회선진화법은 지난 2010년 12월, 4대강 관련 법안과 새해 예산안이 날치기 처리되면서 여야 의원 간 주먹다짐으로 유혈사태가 빚어지자 폭력 국회에 대한 비판 여론이 강해지면서 처음 논의가 시작됐다. 이후 새누리당은 지난해 총선에서 국회선진화법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18대 국회 마지막 날인 지난해 5월 2일 국회 본회의를 열어 국회 선진화법을 표결로 통과시켰다. 당시 전체 투표 의원 192명 가운데 127명이 찬성, 통과 때부터 반대 여론이 있었다. 반대파의 논리가 바로 "이런 식으로는 '식물국회'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셈이다.
국회선진화법은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제한해 다수당의 법안 강행 처리를 차단하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쟁점 법안은 과반수보다 엄격한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이 동의해야 신속처리 법안으로 상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아무리 다수당인 여당이라도 함부로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하게 된 셈이다. 현재 재적 의원 수가 298명인 점을 감안하면 최소 179명의 찬성을 얻어야 신속 법안이 처리될 수 있다. 결국 민주당 등 야당의 협조 없이는 153석의 새누리당으로선 어떤 법안도 처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야 모두 문제
국회선진화법을 둘러싸고 벌이는 여야의 막장 대치에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끝없는 불황 탓에 갈수록 힘이 떨어지는데 민생법안을 챙겨야 할 국회가 서민생활과는 동떨어진 정쟁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한 정치권 인사는 "새누리당 스스로 발의해 지난해 5월 국민들의 박수 속에 이 법을 처리해 놓고 국회 운영에 어려움이 나타나자 위헌 소송까지 거론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라는 비판적 여론이 높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방적인 수(數)의 정치가 아니라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위해 만든 법이 바로 국회선진화법인데 제대로 시행도 안 해보고 무작정 고치자고 나서는 것은 정치인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국회 관계자는 "민주당도 이 법의 맹점을 악용해 정쟁의 도구로 삼겠다는 정략적 계산을 거두어야 한다"며 "'야당의 협조 없이는 국정이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식의 대여 투쟁 수단으로 삼을 경우 전국민적인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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