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두 개의 하늘

빠져나가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예기치 않게 벗어났을 때 '하늘이 도왔다'는 말을 많이 한다. 운(運)이라고 할 수 있는 막연한 뜻의 하늘과 함께 다시 살려주는 덕을 고마워할 때 이천(二天)이라는 말을 쓴다. 심한 어려움에 빠졌을 때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와주는 또 다른 하늘이라는 뜻이다. 대개는 절친한 친구가 이에 해당한다. 드러난 것으로만 보면 좋은 뜻이지만 어원은 조금 다르다.

중국 동한(東漢) 때 소장(蘇章)이라는 높은 직책의 지방 관리가 있었다. 그가 다스리는 한 지역 태수의 부정부패가 심했는데 그는 소장의 절친한 친구였다. 법 집행을 위해 친구를 방문하자 친구는 술상을 마련해 놓고 '사람들은 모두 하늘이 하나인데 나는 둘이다'(人皆有一天 我獨有二天)며 비리를 눈감아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소장은 '오늘의 술자리는 사사로운 우정이지만 내일 할 일은 공적으로 법을 시행하는 것'이라며 술잔을 나누고서, 다음 날 법대로 엄정하게 처리했다고 전한다.

정직이나 성실로 무장한 자신이 아니라 '빽'과 비슷한 이천을 믿었다가 낭패를 당하는 꼴을 자주 본다. 절대적인 신뢰 관계에 있어야 할 가족의 불화로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친구나 아내, 남편에게 배반당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이러한 예는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나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 인사를 가리지 않고 일어난다. 다만, 유명 인사는 믿는 이천이 친구가 아니라 권력이나 금력이라는 데 차이가 있을 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항소심에서 징역 8월을 선고받고 구속수감됐다. 1심에서 10월을 선고받아 구속되고 나서 보석으로 나왔지만, 항소심 판결로 재수감된 것이다. 그가 근거 없는 말로 전 대통령을 비하한 것은 경찰청장이라는 권력을 믿었던 탓일 것이다. 또 그룹이 풍비박산이 날 위기에 몰린 최태원 SK 회장이나 김승연 한화 회장은 돈과 돈에 기대 만든 권력이 무상(無常)하리라고는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은 지금, 자신의 이천을 너무 굳게 믿은 나머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나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는 말을 우습게 본 대가를 치르고 있다. 자신의 힘으로 만들었든, 굴러들어온 것이든간에 스스로는 물론, 주변까지 황폐화시키는 이러한 이천은 적당히 누려야 모두가 편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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