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터뷰通] 난독증 치료·예방 전문가 최명철 씨

난독증은 천재성의 다른 이름 편향적 교육환경이 '학습 실패자' 내몰아

대구 서부교육지원청에서 난독증이 있는 어린이들이 시지각·청지각 훈련을 받고 있다. 국내에는 이런 장애가 있는 어린이가 9%정도 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지만 제대로 된 훈련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 김태형 기자
대구 서부교육지원청에서 난독증이 있는 어린이들이 시지각·청지각 훈련을 받고 있다. 국내에는 이런 장애가 있는 어린이가 9%정도 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지만 제대로 된 훈련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 김태형 기자

레오나르도 다빈치, 토머스 에디슨, 윈스턴 처칠, 앨버트 아인슈타인, 파블로 피카소, 톰 크루즈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지능'시각'청각이 모두 정상인데도 글자를 읽고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증세를 일컫는 난독증(難讀症'dyslexia)으로 고통받았다는 것이다. 다소 생소한 이 용어는 최근 TV 인기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이 장애를 겪는 것으로 묘사되고, 일부 연예인들이 난독증 경험을 고백하면서 국내에서도 부쩍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 프린스턴대학에서 신경언어학(神經言語學)을 전공, 박사 학위를 받은 최명철(41) HB브레인연구소 부소장은 "난독증은 천재성의 다른 이름"이라고 했다.

◆난독증에 대한 인식 전환 필요

난독증은 '읽기 장애'를 뜻한다. 단순히 '읽기'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시각'청각적 정보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증상을 의미한다. 말을 할 때 단어의 음성표현이 뒤죽박죽이 되곤 해 스파게티를 '파스게티'로 읽거나 'ㄱ'과 'ㄴ', 숫자 6과 9를 혼동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여성보다 남성에게서 더 많이 발견되며, 언어를 처리하는 좌뇌의 신경학적 기능 이상이 주된 원인이다.

"어린이들이 그림책을 볼 때 자꾸 뒷면을 보려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2차원 그림을 입체로 보려는 난독증의 경향에 속하는 것입니다. IQ가 정상 범위이고 열심히 노력하지만 성적은 노력한 만큼 나오지 않는 학생 가운데 난독증을 겪고 있는 아이들이 꽤 있습니다. 하지만 난독증은 두뇌의 불균형으로 인해 언어적 기능이 부족한 것을 뜻할 뿐입니다. 난독증이 있는 사람 중에는 직관적, 정서적, 공간적 기능이 뛰어난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우측 뇌가 발달하면 사물을 입체적, 창조적으로 보게 되거든요."

사실 역사적으로 큰 업적을 남긴 유명인사 중에는 난독증을 앓았던 사람이 적지 않다. 고도의 상상력을 발휘해 창의적 사고와 미술'음악 등 예능 분야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기도 한다. 언어를 담당하는 좌측 뇌에 문제가 있을 경우 우측 뇌가 정상인에 비해 훨씬 더 정교하게 기능하도록 발달한 것이다. 난독증이 준 '선물'인 셈이다.

"다빈치의 자필 원고에는 난독증의 특징인 철자 오류가 종종 나타납니다. 에디슨은 저능아 취급을 받을 정도로 학업에 어려움이 있었지요. 아인슈타인은 학창 시절 틀에 박힌 언어 중심의 교육에 좌절했지만 나중에는 창조적 천재성을 발휘했습니다. 난독증은 세상과 커뮤니케이션 하는 차이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현재 교육환경은 좌뇌 편향적이다. 언어 중심의 학습과 평가방법으로 인해 3차원적 사고를 하는 난독증 어린이들은 학습 부진을 겪고,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는 학업 포기 또는 반항'폭력 등 2차적 사회문제로 이어지곤 한다. 그들이 원하지는 않았지만 '실패자'로 내몰릴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선진국의 경우 난독증에 대한 개념, 원인, 역학 등이 일찍부터 연구되어 이러한 사람들이 실패자가 되지 않고 극복하도록 돕는 제도적 장치가 오래전부터 마련돼 있습니다. 미국은 '낙오자 없는 교육법'(No Child Left Behind Act'NCLB) 등의 법률에 의해 국가가 난독증 진단 평가의 지원 및 교육적 혜택을 주고 있습니다. 또 공립학교는 '개인화된 교육 프로그램'(IEP)을 통해 난독증 학생을 위한 무상 맞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요. 우리 사회의 인식 전환이 시급합니다."

◆억울한 아이가 없었으면…

현재의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에서 난독증 증상을 보이는 학생들은 언어적 취약성으로 인해 좌절하거나 조기 유학을 떠난다. 그러나 유학을 갔다가 되돌아와도 국내 교육 환경에 적응을 못 하는 게 현실이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신경학적 취약성이 개선되지 않고 이들의 취약성에 맞는 맞춤형 교육이 실시되지 않기 때문이다. 최 박사도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다.

"한마디로 엉뚱한 아이였던 것 같습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에게 딴죽을 걸거나 말대꾸를 하다가 혼도 많이 났고 '산만하다', '별나다'는 지적은 항상 달고 다녔습니다. 제 입에 아예 빨래집게를 물린 선생님도 있었지요. 산수도 잘 못했고, 글쓰기도 두서가 없어 성적 역시 늘 중간 정도에 머물렀습니다. 보다 못한 부모님께서 숙부가 계신 미국 뉴욕으로 초등학교 3학년 때 저를 보내셨는데 거기에 가서 검사받으니까 제가 난독증 증상이 있다고 하더군요. 하하하."

중학교 2학년 때 한국으로 돌아와 고교를 마친 그는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 명문대학의 하나로 꼽히는 뉴욕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뒤 프린스턴대학에 진학, 2008년에 신경언어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물론, 남모를 치열한 노력이 있었다.

"난 왜 영어 단어 암기가 잘 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어릴 때부터 많았습니다. 나름 노력한다고 했는데 말이죠. 그래서 어떻게 하면 나아질까를 생각하다 언어 능력과 두뇌에 관한 관계를 연구하는 신경언어학이란 분야를 공부하게 됐습니다. 미국은 전체 어린이의 15% 정도가 난독증 경향을 보여서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거든요. 2009년 귀국한 뒤 교육과학기술부의 난독증 전문 자문위원으로 일하면서 '난독증 때문에 억울해지는 아이가 없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이후 계속 강연을 다니고 있습니다."

자신의 경험이 녹아 있는 그의 강의는 학생'교사'학부모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대구시교육청 학부모역량개발센터에서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지난 상반기 동안 수십 차례의 강의에서 매번 5.0 만점에 가까운 평가를 받았다.

"창의성, 뇌 잠재성, 자존감 같이 학부모들이 궁금해하실 만한 내용을 말씀드렸던 덕분인 것 같습니다. 저는 강의에서 '아이가 잘하는 것을 해야 행복해진다. 아이가 잘하는 게 뭔지를 학부모가 고민해야 한다. 안 되는 것을 자꾸 강요하지 마라'고 당부합니다. 아이가 난독증이 있는데 자꾸 문제 풀기만을 반복시킨다면 애한테는 정말 고통을 주는 일이거든요. 나중에 이런 아이들을 위한 전문학교를 설립하는 게 제 꿈입니다. 가끔 높은 연봉을 제시하며 같이 사업을 해보자는 분도 있지만 저는 난독증에 대한 사회 인식을 바꾸는 일에 큰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난독증 체크 리스트

▷유사한 발음을 구별하기가 어렵다.

▷긴 이름 단어를 말하고 쓰기가 어렵다.

▷단어를 정확하게 읽기가 어렵다.

▷다른 사람에게 지시사항에 대한 설명을 못 한다.

▷과제를 순서대로 기억 못 한다.

▷받아쓰기가 어렵다.

▷방향을 찾기가 힘들다.

▷정리정돈이 잘 안 된다.

▷읽거나 듣고 요약하기가 힘들다.

▷책을 어디에서 읽었는지 기억하기가 힘들다.

▷읽기 효율성이 떨어진다.

▷요약을 하기가 어렵다.

▷적절한 단어를 기억하기가 힘들다.

▷추상적 단어의 의미를 정확하게 연결시키지 못한다.

▷동작이 굼뜨고 운동 순서를 혼동한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