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을 맞아 학교에서는 우리말 순화에 대한 가정통신문을 보내고, 뉴스에서는 외래어, 외국어 남용에 대한 기사를 한 꼭지씩 꼭 내보낸다. 이런 것들을 보면 마치 한글날이 우리말이 생긴 날처럼 생각된다. 그렇지만 우리말은 세종대왕이 만든 것이 아니라 단군왕검이 아사달에 나라를 세우기 이전에도 있었던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한글날은 우리말을 표기하기에 적합한 문자를 만든 것을 기념하는 날인데, 이 문자의 발명은 세계 어느 나라도 해 내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단언컨대) 3일 정도의 공휴일을 지정해도 지나치지 않은 우리 역사상 가장 자랑스러운 일이다.
한글은 훈민정음 해례본이나 실록과 같은 역사서에 분명히 '세종어제'(世宗御製:세종대왕이 직접 만듦)라고 되어 있기 때문에 세종대왕이 만든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세종대왕이 문살을 보고 있다가 혹은 궁정을 거닐다가 '불현듯이' 생각하게 되었다는 식의 설명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이야말로 한글의 가치를 폄하하는 것이고, 세종대왕의 위대함을 깎아내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훈민정음은 중세 언어학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을 만큼의 방대한 언어학 연구 결과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훈민정음은 그 바탕에서 여러 가지 형태 문자들의 조합을 만들어 보고, 가장 간결하면서 적은 수의 문자를 가지고도 가장 편리하게 세상의 모든 말소리를 표현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에 '불현듯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의미를 중심으로 한 한자의 체계에 익숙한 세종대왕이 어떻게 소리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문자 체계를 만들어냈는지에 대해서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훈민정음을 만들 당시 성삼문, 신숙주 등이 요동에서 귀양을 와 있던 황찬이라는 사람에게 13번이나 왕래했다는 것에 주목했다. 몽골은 유럽에서 아시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면서 효율적인 지배를 위해 문자를 통일 정책을 위해 표음 문자인 파스파(八思巴) 문자를 보급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파스파 문자는 기존의 한자나 위구르, 티벳 문자에 비해 장점이 두드러지지 않아 잘 보급이 되지 않았다. 이를 개량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해 왔지만 결국 빛을 보지 못하고 원나라는 망하고 말았다. 이익은 원나라가 망했지만 그 학문적 성과들은 남아 있었으며, 황찬이 가지고 있던 지식은 바로 파스파 문자 개량에 관한 것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그렇지만 황찬과 교류하던 시기가 훈민정음이 어느 정도 완성된 시점이었기 때문에 황찬이 가지고 있던 지식이 훈민정음이 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신 이익이 이야기한 사실들을 통해 세종대왕이 소리를 문자로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황찬과 상당 부분의 지식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것과 새로운 문자를 만들기 위해서 좋은 의견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구하던 세종대왕의 모습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능인고 교사 chamt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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