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경숙(대구 남구 봉덕동)
또 휴대전화가 울린다. 역시 서울지역 번호다. 부동산 투자하라거나 대출해 주겠다는 전화일 것이다. 그냥 내버려두자니 끈질기다. 하는 수 없이 "여보세요"라고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경숙이니? 오랜만이야. 나 경자야."
경자가 누군가? 한참을 더듬거리는 내 미욱함을 눈치 챘는지, 상대가 여고 동창이라고 한다. 그제야 화들짝 놀랐다. 하루도 안 보면 죽고 못 살던 단짝 친구였다. 졸업하고 그녀가 시골집으로 내려간 후 소식이 끊어졌다. 이제나저제나 연락 올까 기다리다 세월이 흐르면서 내 기억의 서랍 깊숙이 들어가 버렸다.
나를 찾으려고 숱하게 수소문을 했다는 친구 말에 목이 멨다. 벌써 30년도 더 지났는데 애타게 찾았다는 우정이 고마웠고, 삶에 허둥거리다 친구조차 잊어버린 것이 미안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얼마나 변했을까. 내가 늙어버려 못 알아보면 어쩌나. 며칠 잠을 이룰 수가 없다. 헤어진 첫사랑 연인을 만나도 이만큼 설렐까. 이 옷이 어울릴까. 저 옷이 좋을까. 온갖 수선을 다 피우다 허둥거리며 약속장소로 나갔다.
카페에 들어서는 순간, 소곤거리는 옆 사람도 아랑곳하지 않고 큰소리로 이름을 부르며 얼싸안았다. 우리는 고교 시절로 돌아가 화려한 수다 상을 차렸다. 1시간을 떠들었을까. 나이가 오십이 지나면 건강을 챙겨야 한다며 경자는 '○○건강식품 소장'이라고 적힌 명함을 내밀었다. 그리고 한 통에 몇백만원이 넘는 건강식품을 사라고 권한다. 에어컨이 빵빵하게 돌아가서 그런가. 갑자기 찬바람이 폐부를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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