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30·40대들은 만화 '들장미 소녀 캔디'의 내용은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로 시작하는 주제가는 너무나 명확하게 기억을 한다. 안소니, 테리우스, 이라이자 이런 이름들과 함께 몇몇 이미지들은 기억하지만, 내용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다 보니 주제가처럼 캔디라는 인물은 청순가련하지만 씩씩한 인물로 각인되어 있다. 드라마들에서도 캔디형 인물이라고 하면 돈 많고 잘생긴 남자들의 사랑을 받는 가난한 여자를 칭하는데, 캔디형 인물들은 대개 외롭고 슬퍼서 연민을 자아내는 것과 밝고 씩씩한 성격이 복합적으로 작용을 해서 (우리나라에서는) 남자들의 사랑을 받는다.
그런데 원작의 주제가를 보면 우리나라와는 많이 다르다. 일본의 주제가는 다음과 같다. "주근깨 따윈 신경 쓰지 않아. 납작코라 해도 그래도 마음에 들어. 말괄량이 장난 너무 좋아. 달리기 깡충 뛰기 너무 좋아. 나는 나는 나는 캔디. 나 혼자 있으면 조금 쓸쓸해. 그럴 땐 이렇게 말하지 거울을 보면서. 웃어라 웃어라 웃어라 캔디 울보 따위는 안녕이야." 이 주제가를 보면 캔디는 한마디로 못생겼지만 명랑한 여자다. 이런 유형의 인물은 한국에서는 주인공 옆에 있는 감초 같은 존재는 될 수 있지만 절대로 주인공이 될 수가 없다. 만약에 원래의 캔디 주제가를 그대로 번역해서 불렀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주제가만큼 사랑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와 비슷한 예로 대구 출신 작곡가 박태원이 번안한 노래 '클레멘타인'을 들 수 있다. '클레멘타인'은 원래 포티나이너라고 불리는, 1849년 금광을 찾아 서부로 몰려든 사람들의 노래였다. 그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힘든 노동에 시달리던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었다. 원래의 노래를 번역하면 뒷부분은 거의 같고 앞부분은 '깊고 깊은 산골짝에 금광 찾아 땅 파는 포티나이너 아버지와 클레멘타인 있었네' 정도가 된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공감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번안자는 포티나이너 아버지를 한국에서 가장 힘든 노동에 시달리던 '고기 잡는 아버지'로 바꾼 것이다. 번역이라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바로 이런 각 나라 간의 미묘한 정서적 차이를 옮기는 것이 어렵고, 옮기려고 하는 순간 원작에서 의도한 것들과는 많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몇 년째 되풀이되는 일이지만 노벨 문학상 발표가 될 즈음에 고은 시인의 집 주변에 기자들이 몰려들었다가 허탈하게 흩어지고, 한국 작품의 번역이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분석의 기사가 나온다. 시의 경우 번역이 되는 순간 원래의 맛과 멋이 사라지기 때문에 번역을 한 작품들이 인정을 받기는 어렵다. 서점에 번역된 소설이나 수필집은 많지만 시집을 보기는 힘든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노벨 문학상을 받은 시인들은 대부분 그 나라에서는 국민 시인으로 불리고, 그 나라 사람들은 그의 시를 애송한다. 그런 것을 보면 문제는 꼭 번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능인고 교사 chamtc@naver.com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李대통령, 대북전단 살포 예방·사후처벌 대책 지시
대통령실 "국민추천제, 7만4천건 접수"…장·차관 추천 오늘 마감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