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천황 불경죄(不敬罪)

봉건시대 일본인들은 "다이묘는 볼 수 있다. 하지만 쇼군을 보면 눈이 먼다. 그리고 천황은 보려 해도 인간의 눈에 드러나지 않는다"고 배웠다. 일반 백성은 범접할 수 없는 신이기 때문이다. 히로히토의 재단사들 얘기는 이런 '천황관'을 잘 보여준다. 재단사들은 그의 몸 치수를 잴 때 반드시 장갑을 껴야 했다. 신령한 천황의 몸은 배우자 이외에는 아무도 만질 수 없기 때문이다.

더 기막힌 얘기도 있다. 제108대 천황 고미즈노오(後水尾'1596~ 1680)는 재위 중 홍역에 걸렸다. 당시 일반적인 요법은 뜸이었는데 그는 이 치료를 받지 못했다. 신이 인간과 같은 치료를 받을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결국 고미즈노오는 뜸 치료를 받기 위해 퇴위해야 했다. 웃기는 것은 '신성한' 흰 쌀밥만 먹어야 하는 천황의 처지가 싫어 자리에서 물러난 천황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천황은 퇴위 후 꿈에도 그리던 소바(메밀국수)를 질리도록 먹었다고 한다.

이런 천황의 신성(神性)은 1946년 1월 1일 발표된 히로히토의 '국운 진흥 조서', 이른바 '인간선언'으로 부정되는 듯했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천황=신'이란 조작된 관념을 떨치지 못했다. 1946년 4월 말부터 1954년 8월까지 총연장 3만 3천㎞에 걸친 히로히토의 전국 순행(巡幸)에 일본인들이 보여준 반응은 이를 잘 보여준다. 순행은 히로히토가 신에서 인간으로 내려왔음을 보여주려는 연출이었으나 그를 대하는 일본인들의 태도는 사이비 종교의 교주를 대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천황을 보고 감격으로 울음을 터뜨렸고 어떤 사람은 그가 지나간 길의 조약돌을 주워가기도 했다. 또 어떤 사람은 히로히토가 목욕한 물을 주전자에 담아갔으며, 그 목욕물에 자기 몸을 담그기 위해 히로히토가 묵을 여관 주인에게 뒷돈을 건네려 했던 지방 고관들도 있었다.(이 계획은 히로히토가 감기로 목욕을 하지 않아 무산됐다)

배우 출신인 야마모토 다로(山本太郞) 일본 참의원 의원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실상을 알리는 편지를 아키히토 천황에게 전달했다가 사퇴 압박을 받고 있다. 표면적 이유는 '천황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것이지만 배경에는 '불경스럽게 어떻게 천황에게 감히 편지를'이라는 감정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아직도 천황은 하늘에서 땅으로 완전히 내려오지 않은 것 같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