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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 악행과 돈 꾸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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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악한 사람과 이웃해 사는 이가 있었다. 그 화가 자신에게 미칠까 두려워 이사를 가려 하자 다른 이가 말하기를 "포악한 죄가 극에 이르고 있다. 조금만 기다리면 스스로 망할 것인데 구태여 이사할 필요가 있는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마지막 악행이 내게 미칠 것이 두렵다"며 이사를 가버렸다.

어떤 일에서 전조가 보이면 꾸물거리지 말 것을 경계하는 이야기로 한비자의 설림(說林)에 나온다. 여기에서 '악행의 극치'를 '관장만'(貫將滿)이라 했다. 관(貫)은 동전을 꿴다는 뜻이다. 돈 꾸러미가 가득 차 더 꿸 곳이 없다는 말로 악행이 극에 이르렀음을 비유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좌구명이 주석한 것으로 알려진 춘추좌전(春秋左傳)에도 나온다. 오랑캐가 진(晉)의 국경을 공격하자 왕이 이를 토벌하려 했다. 이에 한 신하가 말하기를 오랑캐의 악행이 극에 이르면 스스로 망할 것이라고 했다. 물론 이 말 뒤에는 오랑캐의 악행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왕이 정벌하면 백성이 더욱 고마워할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정치적 음모가 숨어 있다. 여기서는 '영기관'(盈其貫)이라고 했는데 앞의 예와 같은 뜻이다. 허다한 비유를 두고 최고조의 악행을 다 꿴 돈 꾸러미로 표현한 것이 재미있다.

법무부가 최근 이른바 '전두환법'이라고 불린 공무원 범죄 몰수 특별법 개정안에 이어 '범죄 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2006년 23조여 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은 대우그룹 임원 사건을 겨냥했다 해 '김우중법'이라고도 부른다.

전두환법을 만들었더니 갑자기 전 씨 일가가 1천600여억 원에 이르는 추징금을 완납하겠다고 했다. 김우중법을 만들면 전 대우그룹 임원뿐 아니라 추징금을 선고받고도 오리발을 내민 사람들의 숨은 돈이 쑥쑥 나타날 것을 기대하는 모양이다. 반면 전경련은 이 법안이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것이라고 앓는 소리다.

이들처럼 수천억~수조 원대가 아니더라도 부정한 방법으로 돈 꾸러미를 꿴 사람이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정당한 기업 활동이 아니라 부정하게 돈을 빼돌려 수천수만 명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해 놓고, 코미디 프로그램의 영구처럼 '나, 돈 없~다'라고 해도 아무 조치도 못 하는 사회는 건전하지 않다. 옛 사람들이 악행을 왜 돈 꾸러미 꿰는 것으로 비유했는지 잘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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