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욕먹고…다치고… 교통봉사 모범운전자 수난

도로교통법상 경찰보조자…운전자 대부분 모르고 무시, "수고하세요" 한

13일 오전 대구 수성구 만촌네거리에서 모범운전자 윤영원(59) 씨가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 윤 씨는 매주 1회 오전 7시부터 8시 30분까지 교통정리 자원봉사를 한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13일 오전 대구 수성구 만촌네거리에서 모범운전자 윤영원(59) 씨가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 윤 씨는 매주 1회 오전 7시부터 8시 30분까지 교통정리 자원봉사를 한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지난달 26일 대구 수성구 상동 들안길네거리에서 교통정리 봉사활동을 하던 이상훈 대구모범운전자회연합회 회장은 좌회전 중 끼어들기로 일대 교통 흐름을 방해하는 차량을 멈춰 세웠다. 하지만 차량 운전자는 이 회장의 신호에도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가다 결국 접촉사고를 냈다.

사고 운전자는 다짜고짜 이 회장에게 다가와 "왜 가는 길을 막느냐"고 따지기 시작했다. 이 회장이 "끼어들기 위반을 하셨지 않느냐"고 정중하게 설명했지만 그 운전자는 도리어 "늙어가지고 뭐하러 나와서…. 경찰이라도 되냐"며 욕설과 폭언을 퍼붓기 시작했다. 이 회장은 화가 났지만 서로 싸우다가는 혼잡한 도로가 더 혼잡해질 것 같아 꾹 참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대구 모범운전자들이 도로 위에서 수난을 당하고 있다.

대구 지역 1천233명의 모범운전자들은 교통 혼잡 구역이나 각종 행사장에서 경찰을 도와 자원봉사 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일반 운전자들은 이들의 수신호를 따르기는커녕 욕설과 폭언을 퍼붓기 일쑤다.

모범운전자는 도로교통법이 정한 경찰보조자로 일반 운전자들은 모범운전자의 교통정리 수신호를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이 사실을 모른 채 통제에 따르지 않는다. 오히려 운전자들은 봉사활동에 나선 모범운전자들에게 "경찰이 아닌데 왜 당신이 이래라저래라 하느냐"며 따지거나 심한 경우에는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내뱉는다. 한 모범운전자는 "모범운전자들은 순수하게 봉사의 마음으로 경찰의 교통정리를 도와주는데 지나가는 운전자들이 욕설과 폭언으로 우리를 대할 때마다 '이 일을 왜 하나'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임종환 대구북구모범운전자회 회장은 "얼마 전 성북교에서 교통정리를 하던 한 회원이 직진 차로에서 좌회전하려던 차량을 막아서는 순간 그 차량의 바퀴가 회원의 발등을 넘어가 버리는 사고가 났다"며 "다행히 부상 정도는 크지 않았지만 봉사활동 나갈 때마다 아찔한 순간이 많다"고 말했다.

모범운전자들은 경찰보조자로 법적인 지위를 인정받기는 하지만 이들에 대한 경찰의 지원은 그리 많지 않다. 경찰청에서 매년 40여만원의 활동보조비를 지원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순수하게 자원봉사 차원에서 일을 도와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모범운전자들의 숫자도 경찰서마다 많이 줄어든 상태다. 이상훈 회장은 "10년 전만 해도 구마다 500여 명씩 있던 모범운전자들이 지금은 평균 150명 안팎으로 줄어들었다"며 "경제사정이 어렵고 택시 업계도 계속 불황이다 보니 봉사활동에 짬을 낼 만한 운전자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모범운전자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택시, 버스 등 사업용 자동차 운전자로 2년 이상 무사고 또는 형사 입건 등의 결격 사유가 없어야 한다. 용호준 대구남구모범운전자회 회장은 "항상 내가 '베스트 드라이버'라는 자긍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교통정리 및 통제 봉사활동도 그러한 긍지를 바탕으로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상훈 회장은 "모범운전자들은 경찰을 도와 혼잡한 교통을 풀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라며 "교통정리 봉사활동에 나섰을 때 운전자들이 '수고하세요'라며 손인사라도 해준다면 보람을 갖고 더 열심히 봉사활동에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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