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랑방이 'Love room'?…웃지 못할 번역 오류들

교양서·성서·영화·외교문서·보도…동서고금 다양한 오역 사례 소개

오역의 제국/서옥식 편저/도서출판 도리 펴냄

우리 주변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번역물 가운데 상당수가 완전히 엉뚱한 의미로 왜곡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서옥식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이 펴낸 책 '오역의 제국'은 이처럼 국내에 널리 읽히는 번역물 대부분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오역이 많은 사실을 발견하고 이의 잘못을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실제로 이 책을 읽다 보면 '설마 이것까지 오역이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오역이 우리 주변 곳곳에 널려 있음을 깨닫게 된다.

오역은 역사와 사실을 왜곡하고 인간의 지식세계를 파괴하며 문화와 학문의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번역자의 불성실, 무지 또는 해당 국가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 등으로 오역이 도처에 널려 있다.

이 책은 한 언어가 다른 언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의미와 정보를 잃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오류를 범해 사실이 왜곡되는지를 다루고 있다. 오역으로 인해 오인과 혼란을 초래한 사례를 집대성했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든다면 에디슨의 명언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는 '1%의 영감이 없으면 99%의 노력이 있다 해도 천재가 될 수 없다'로 노력보다 영감의 소중함을 강조한 말이었다. 노력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영감을 강조한 말이다. 또 마릴린 먼로가 주연한 영화 '7년 만의 외출'은 '7년 만의 외도'가 올바른 번역이고, 아담 스미스가 지은 '국부론'은 '민부론'이 올바른 이름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히포크라테스가 했다는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말도 예술이 아니라 의술이라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만 이것을 예술로 번역해서 쓴다고 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집주인 남자의 주거공간인 전통 한옥의 '사랑방'을 'love room'으로 번역하는 기막힌 일도 소개한다.

교양서적은 물론 교과서, 성서, 영화, 가요, 외교문서, 언론보도, 저명인사들의 어록과 자서전, 인터넷 등지에서 광범위하게 발견되는 오역 사례를 풍부하게 소개하고 있다. 이 밖에도 동서고금의 웃지 못할 오역 사례를 잘 소개하고 있다.

저자의 이 같은 오역의 잘못에 대한 관심과 집착은 13년간 외신을 담당했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잘못 번역을 했다가 '깨진' 기억들이 하나둘 이 책에 고스란히 반영됐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이 책 모두에 있는 '책을 내면서'에서 "기회가 되면 언젠가는 오역 사례들을 모아 책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광우병 보도 오역,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 오역 등 오역 문제가 우리 사회 주요 이슈의 하나로 부각됨에 따라 책의 출간 필요성을 더욱 느끼게 됐다"고 했다.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에 대한 핵폭탄 투하, 독일의 미국 백악관 폭격 포기, 미국의 베트남 전면적 개입, 동서 냉전체제의 해체를 앞당긴 베를린장벽 붕괴, 9'11 테러 등 인류의 역사를 바꾼 굵직한 사건들은 따지고 보면 오역이 빌미가 됐거나 오역과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이처럼 한 사람의 생명이 왔다갔다 할 수 있고 한 나라가 전쟁으로 빠져드는 것은 물론 전 세계가 화마에 빠져버릴 수도 있는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이 오역이라는 설명이다.

연합뉴스 외신부장과 편집국장을 지낸 저자는 "번역에서의 신중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며 "오역은 독자에 대한 죄악이자 원저자에 대한 죄악"이라고 강조한다.

643쪽, 2만5천원.

이동관기자 dkdk@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