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님께서 사용 중이신 01× 번호는 내년부터 사용이 불가합니다. 이는 정부 정책으로 통신 3사에 공통 적용되는 사항입니다. 2013년 12월 중 고객님의 01× 번호가 사용정지 처리되어 번호 미변경 시 발신정지될 예정입니다.'
몇 달 전부터 은근히 스트레스를 주는 문자 메시지다. '한시적 번호이동 제도'의 종료를 알리는 내용이다. 011, 016. 017, 018, 019로 시작하는 번호로 3G 또는 LTE 서비스를 이용해온 사람들이 내년부터는 010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미래창조과학부에 따르면 SKT 76만9천 명, KT 26만9천 명, LGU+ 8만2천 명 등 총 112만 명이 대상이다. 더군다나 현재 기자가 쓰고 있는 휴대전화 기종은 010 번호로 자동전환도 되지 않는다. 직접 이동통신사 대리점'홈페이지'고객센터 방문을 통해 번호를 바꾸지 않으면 아예 발신기능이 정지된다고 한다. '해외체류 중 통화 단절이 예상되므로 출국 전 번호를 미리 변경하라'는 통신사 안내 메시지 때문에 최근 급하게 다녀온 해외 출장 내내 가슴 졸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주인의 무관심 덕분에 '골동품'이 되어버린 것은 주변에 또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장만했던 지프형 차량이다. 보험사 견적서에 94만원으로 적힌 차량 잔존가치는 가슴을 아프게 하지만 "이런 외제 차 타려면 얼마나 드느냐"고 물어보던 어느 대리운전 기사의 '덕담'에 '나름 클래식 카'를 타는 재미라고 위안을 삼는다. 그러나 이 또한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다. 올해를 넘기지 못할 01× 전화번호보다야 조금 더 버티겠지만 요즘 들어 수동 기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꼬락서니를 보면 '시한부 생명'임에는 틀림이 없다. 머지않은 미래의 어느 날, 폐차장으로 향하는 애마(愛馬)를 위해 '조마문'(弔馬文)이라도 미리 써둬야겠다.
내년이면 추억이 될 3자리 휴대전화 식별번호나 조만간 헤어져야 할 고물차에 개인적으로 유별난 집착이 있는 건 아니다. 물론 1990년대 중반부터 써온 만큼 애정이 전혀 없다는 것도 거짓말일 게다. '응사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의 시대적 배경 때부터 함께 해왔으니….
하지만 2014년 갑오년 새해를 앞두고 정작 작별을 고하고 싶은 것들은 따로 있다.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바꾸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다는 이유로 현실 혹은 '앙시앙 레짐'(ancien regime'구 체제)에 안주해온 나태함, 게으름, 매너리즘이다. 010 번호가 대세를 이룬 뒤에도 고집스레 01× 번호를 쓴다고 들었던 '보수꼴통 출신답다'란 핀잔이 결코 칭찬은 아니지 않을 것이다.
떠밀려서 변화와 개혁을 하게 되는 상황이 바람직할 리 없다. 시시콜콜한 것들과 헤어져야 할 개인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정치'경제 등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이다. 한국호(號)에 대한 경고음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한 것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원화 가치 절상 덕분에 올해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사상 최대인 2만4천44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하지만 3만달러를 영원히 넘기 어려울 것이란 회의론 역시 적지않다.
여기에다 일부 지식인들은 최근 망국(亡國)에 대한 우려까지 쏟아내고 있다. 방공식별구역 논란으로 상징되는 동북아의 긴박한 정세나 대통령선거 결과 불복 등으로 대변되는 우리 내부의 분열 양상이 구한말 망국 때와 일치한다는 지적이다. 암담하기 짝이 없는 전망이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독자가 적지않을 터이다.
새해가 2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편안하게 안주해온 현실과 급작스레 이별을 준비하기에는 짧은 시간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세상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능동적인 대처만이 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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