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좋은생각 행복편지] 갓바위 부처님은 어떤 생각이실까

팔공산의 가장 동쪽 봉우리인 관봉, 해발 850m의 관봉 정상에서 눈비가 오나 바람이 불거나 하늘을 이고 바위 위에 앉아 사바세계를 굽어보고 계시는 분. 찾아가 무릎 꿇고 기도를 드리면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주신다고 소문이 나서, 이 부처님을 찾는 사람들의 행렬이 일 년 내내 끊이지 않는답니다. 특히나 부처님이 쓰고 계신 바위 갓이 학사모와 비슷하여 입시 성공 기원 기도가 잘 통한다고 알려져 수능을 앞두거나 입시 철이 되면 산봉우리가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해 기우뚱할 만큼,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수험생 어머니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지요.

이런 지극정성파 어머니들의 뒤꼭지에다 대고 '기도가 통하면 부정이다'라고 딴죽을 건 심리학자가 있습니다. 어머니의 기도발로 자식이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얻고 좋은 학교에 입학하게 된다면 그건 심각한 부정이라는 겁니다. 참으로 지당한 말씀이지요. 만약 부처님께서 복전이나 듬뿍 놓고 간절하게 매달리는 어머니의 자식들만 특별히 봐줘서 좋은 성적을 거두게 한다면 이건 전 국민이 촛불을 들고 나서서 항의할 일이 맞지요. 고등법원, 대법원이 아니라 세존 전에까지라도 가서 바로잡아야 마땅하겠지요.

부모의 기도와 자녀의 시험 성적은 아무 관계가 없으며, 고사장 교문에다 합격 엿을 붙이는 따위의 촌스런 헛짓도 제발 그만두자고 하던 이 고매한 학자님, 그도 자식 바보이기는 마찬가지였던가 봅니다. 자신의 딸이 수능을 치던 날, 모든 일정을 제쳐두고 아침 일찍 딸애의 고사장으로 달려가 교문에다 엿을 사서 붙이고는 시험이 끝나는 오후 늦게까지 교문 앞을 서성거렸다나요. 두 손 모아 기도하며 말이지요. 자식 일 앞에서는 가방끈의 길고 짧음도 다 소용이 없는 듯합니다.

부모는 자식 이름을 부를 때마다 간절해지고 그 뒷모습만 봐도 기도부터 하게 되지요. 자녀에 대한 부모들의 이 간절함이 지나친 욕심이나 극성으로 흐르지 않고 올바른 교육 역량으로 발휘된다면 우리 교육의 많은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문제는 그 조절이 결코 쉽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어느 학부모 교육 프로그램에 강사로 참여한 자리에서 학모님 한 분이 던져온 질문이 지금도 뇌리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그날 제 강의는 '우리나라 초등학생들의 행복지수가 OECD 국가 중에서 제일 낮은데 그 원인으로 꼽히는 게 너무 빡빡한 학원 공부와 잦은 시험, 쉴 틈을 주지 않는 과외 공부 등이다. 이건 즐거운 공부가 아니라 강제된 학습노동이다. 자기주도적인 공부가 아니라 어머니의 과욕에 멱살 잡혀 끌려다니는 공부이다. 이렇게 공부하다 보면 평생학습의 원동력인 흥미나 호기심이 말살될 뿐 아니라 인성 자체가 의존적으로 고착되어 자존의, 단독적인 삶을 살아갈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먼 미래의 일로 불안을 조성하여 다그치지 말고 하루하루의 공부가 즐겁고 행복하도록 학습복지를 보장해야 한다.' 뭐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그 학모님은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를 하겠는데 가슴으로는 도저히 수용하지 못할 것 같다, 아이를 강제적으로 훈련시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키운 어머니의 교육 방식은 어떻게 설명되나. 고3 아들이 왜 일찍부터 억지로라도 선행학습을 시켜주지 않았느냐고 항의해서 지금 후회하고 있다. 강사님은 자식들을 다시 키운다면 오늘 강의 내용처럼 할 건가'라며 입시전선의 눈보라 치는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말투였습니다.

교육 방식에 대해 상반되는 주장들은 우리를 헷갈리게 만듭니다. 누구는 어린 시절부터 큰 꿈을 가져라, 꿈이 있어야 목표가 분명해져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게 된다고 하고, 또 누구는 아이들에게 꿈을 꾸라고 할 때 그 꿈의 핵심은 세속적 성공과 소유에 대한 끈을 놓치지 말라는 자본의 명령으로서 꿈은 병이라고까지 합니다. 누구는 고래도 춤추게 하는 칭찬, 그 칭찬 속에 자란 아이가 자존감이 높고 공부를 잘하게 된다고 하고, 또 누구는 만병통치약으로 알고 있는 칭찬과 긍정의 말들이 약이 아니라 독이다, 달콤한 칭찬은 그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거짓말쟁이로 만든다고 합니다. 누구는 체벌을 하면서라도 가르칠 것은 분명히 가르쳐야 한다고 하고, 또 누구는 어떤 체벌도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라고 단호히 반대하고 있습니다. 누구는 경쟁이 왕따와 폭력의 원인이라고 하고, 또 누구는 경쟁이야말로 모두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발전의 활력소라고 합니다.

그날, 그 학모님에게는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간절함 속에 인간적 고뇌나 진정성이 어느 정도 들어 있느냐가 문제'라고 얼버무리고 말았지만 영 뒤끝이 개운치 않았습니다. 솔직히 지금도 자신이 없습니다. 이 땅의 어머니들로부터 자식 공부에 관한 기도를 귀가 아프도록 듣고 그 간절한 마음을 두루 어루만져 주시면서도 한 번도 입시부정에 연루되지 않을 만큼 헤아림이 크신 갓바위 부처님께 이 문제를 여쭙는다면 어떤 설법을 펼치실는지, 이 엄동설한이 지나면 꼭 찾아뵙고 자세히 여쭈어봐야겠습니다.

김동국/시인 poetkim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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