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통일의 기습

역사의 변화는 인간의 예측 능력을 넘어선다. 500년간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던 앙골라와 모잠비크의 독립은 그 생생한 실례다. 포르투갈을 36년간 통치한 안토니우 살라자르는 앙골라 반란이 7년째 계속되고 있던 1968년 앙골라와 모잠비크를 언제 독립시킬 것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대답이 걸작이었다. "몇백 년이 걸리는 문제다. 500년 이내에는 독립시킬 것이다. 그동안 그 나라들은 지속적으로 발전해야 한다." 앙골라와 모잠비크는 1975년에 독립했다. 500년이 아니라 7년 만에.

20세기 말 최대 사건인 독일 통일도 마찬가지다. 통일이 그렇게 급작스럽게 이뤄질 줄 누구도 몰랐다. "1989년 11월 9일 오후 9시에 (베를린) 장벽이 열릴 것이라고는 우리도 전혀 몰랐다." 서독 대통령이었던 바이츠제커의 회고다. 고르바초프 역시 그랬다. 그는 1987년 바이츠제커에게 "독일이 통일되려면 100년이 지나야 하며 아무리 빨라도 50년은 걸릴 것"이라고 했다.

보잘것없는 예측 능력에서 동독 측도 다를 것이 없었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이어진 1989년 11월 9일 동독 정부의 '여행 자유화 조치'는 체제 존속을 위한 제한적 유화 조치가 본질이었다. 서독으로 여행을 허용해도 동독 주민이 다시 동독으로 돌아올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여행 자유화 조치를 발표했던 동독 관리 귄터 샤보프스키의 회고다. "장벽 개방이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의 몰락을 초래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안정화'의 시작이라고 보았다."

이들 두 '사건'은 우연처럼 보인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해 그렇게 보였을 뿐 사건은 이미 준비되고 있었다. 포르투갈은 벌써 식민지 경영 능력을 상실한 후진국으로 전락해 있었고, 동독에서는 '노동자는 일하는 척하고 당국은 임금을 지급하는 척하는' 공산 체제의 모순이 임계치에 도달해 있었던 것이다. 북한의 상황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래서 우리가 모르는 새 통일은 벌써 우리 곁에 와있는지도 모른다. 정부가 통일에 대비해 만든 '통일 법제 관계 부처 협의체'가 오는 15일 첫 회의를 갖는다는 소식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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