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영처의 인문학, 음악을 말하다] 섬집 아기, 왠지 슬퍼지는 노래

한국인들이 가장 즐겨 부르는 자장가 중의 하나가 섬집 아기이다. 이 노래를 부르다 보면 서정적인 가사와 선율이 어우러져 조용한 섬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구불구불한 해안선을 따라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가고 백사장에는 게 한 마리가 잰걸음으로 어디론가 바삐 가고 있다. 그런데 이 노래는 왠지 슬프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 다 못 찬 굴 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어디선가 철썩철썩 파도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그만큼 섬집 아기는 풍경의 효과를 잘 살린 곡이다. 'a-b-a-b'로 연결되는 선율은 잔잔한 파도가 밀려오고 밀려가는 모습을 아주 시각적으로 처리하고 있다. 하지만 이 노래가 전 국민의 애창곡이 되기까지는 가사에 담겨 있는 모성애가 지대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모성애는 인간이든 짐승이든 체내생식을 하는 생물의 지극히 공통적인 특징이다.

그런데 얼핏 얼핏 드러나는 단조풍의 선율에는 애처롭고도 지극한 모성이 담겨 있다. 이것은 노래의 가사와 선율 속에 아버지의 부재라는 중요한 사실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여성의 비극적인 숙명이 감지되는 것이다. 가장 없이 혼자 아기를 키우는 젊은 여인, 아버지 얼굴을 모른 채 자라는 아기, 그것은 이 노래의 배경이 섬이라는 점에서 더 타당성을 지니며 사람의 마음을 애잔하게 만들고 있다.

아마도 아기의 아버지는 어부였으며 어느 날 바다에 나간 뒤로 다시 돌아오지 못했으리라. 가부장적 사회에서 남편은 한 집안의 기둥이다. 기둥이 사라진 집은 심각한 균열 상태를 나타낼 수밖에 없다. 흔히 엄마가 없으면 새엄마를 들이지만 남편이 없다고 해서 새 남편을 들이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과부 삼 년에 쌀이 서 말이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남편 없는 여자와 아비 없는 아이는 공동체 속에서 천대받거나 무시당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그래서 남편 없고 아비 없는 설움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일이라 했다.

전통 친족사회에서 홀로 남은 여자가 받는 수모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과부는 일단 남편을 잡아먹은 여자이며, 혹 인물이 반반하기라도 하면 수절하지 않고 언제든 도망갈 수 있다는 의혹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며, 별것 아닌 일로도 이웃 여인들의 온갖 억측과 입방아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남편의 노동력이 사라지면서 닥쳐오는 생활고였다. 여인은 살아남기 위해, 자식을 남부럽지 않게 키우기 위해 점차 억세고 거칠게 변해간다. 연약하고 부드러운 여인의 모습으로는 더 이상 험한 세상을 헤쳐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진 세월이 흐르고 흘러 젊은 날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여인은 어느새 늙어버리는 것이다.

그제야 이웃들의 입방아는 사라진다. 공동체는 더 이상 여인이 아닌 중성이 된 이 늙은 여인을 깍듯이 대접해 준다. 그래서 어쩌면 이 노래는 어른이 된 아이가 어머니가 견뎌온 힘든 날을 위로하며 부르는 노래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때 나는 어리고 엄마는 고왔잖아요……라고.

비올리스트 용재 오닐은 전쟁고아이자 정신지체장애인 엄마를 두었고 그 엄마를 입양한 미국인 양할아버지와 양할머니 아래서 자랐다. 그의 두 번째 앨범 '라크리메'(눈물)는 돌아가신 조부모에게 바치는 곡이다. 앨범의 마지막에 실린 섬집 아기는 넘치는 사랑을 주셨지만 이제는 안 계신 조부모에 대한 그리움과 아버지 없이 자란 용재의 허전함과 쓸쓸함을 대변하고 있는 곡이라 할 수 있다.

섬집 아기는 넉넉하지 않은 시대를 살아온 한국인들의 가슴 저변에 공통으로 내재해 있는 애잔한 기억들을 흔들어낸다. 노래라는 것은 비슷한 시대와 공간에 기대어 비슷한 경험을 한 구성원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주는 측면이 분명 있는 것 같다.

서영처 영남대학교 교책객원교수 munji64@hanmail.net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