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말하는 '국어'는 춘추시대 각국의 여러 가지 일들에 관한 말(기록)이란 뜻이다. BC 350년쯤에 만들어졌으며, '춘추좌씨전'에 비교되는 당시 여러 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주어'(周語), '노어'(魯語), '제어'(齊語) 등 모두 8개 나라 역사를 정리해 두고 있다. '춘추좌씨전'을 '내전'(內典)이라 하고, 이 책을 '외전'(外典)이라 하는데, 이는 두 책이 서로 보완관계에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내전이 외전보다는 더 근본이다. 저자는 '춘추좌씨전'을 지은 '좌구명'(左丘明)이라고 하나 불확실하다. 예로부터 '좌국사한'(左國史漢)이라 하여 역사의 고전으로 꼽힌다. '국어'가 대상으로 하는 시대는 BC 967∼453년(주 목왕∼정정왕)까지로 '춘추'가 다룬 시대(BC 722∼481년)보다 길다. 그러나 이 책은 역사와 정치에 관한 일화를 모은 단편집의 성격이 강해 체계적 서술이 되지 못했다.
여기에 실린 이야기 중 재미있는 한두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주나라의 여왕(勵王)은 포악해서 사람들에게 욕을 많이 얻어먹었다. 그래서 소공(昭公)이 왕에게 "사람들은 왕의 명령을 따를 수 없다고 합니다"라고 건의했다. 그러자 왕은 언로를 열 생각은 하지 않고 욕하는 사람을 감시하고 고발하게 하고, 또 죽였다. 그 후 사람들은 말을 하지 않고 눈짓으로 신호를 주고받았다. 왕은 기뻐했다. 소공이 말하기를 "그것은 입을 막았기 때문입니다. 백성의 입을 막는 것은 강물을 막는 것보다 더 위험합니다. 강을 잘 다스리는 사람은 물길을 터서 잘 흐르게 하듯이 사람들이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라고 간했다. 그러나 여왕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는 3년 뒤 쫓겨나고 말았다.('주어' 상편)
'맹자'에 보면 제(齊)나라 선왕(宣王)이 맹자에게 제나라 환공(桓公)과 진(晉)나라 문공(文公)의 일을 물은 기사가 나온다. 이때 물론 맹자는 힘(무력)으로 천하를 호령한 그런 왕의 일은 잘 모르겠고, 정 물으신다면 왕도(王道)에 대해서 말하겠다고 했다. 이후로 '제환진문'(齊桓晉文)은 힘으로 하는 정치, 곧 패도(覇道)의 대명사가 되어 유학에서 법가사상이나 권모술수처럼 나쁘게 여겼다. '맹자'만 봐서는 그 배경을 잘 알 수 없는데, 이 '국어'에는 진나라 문공이 초년에 후계자 문제로 다른 나라에 피신해 20년 가까이 유랑생활을 하다가 장인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진나라로 돌아와 왕위에 오른 이야기가 자세히 실려 있다. 특히 문공이 제나라에 피신해 있을 때, 제나라 어느 제후의 도움으로 안락한 생활에 길들여져 있을 때 장인의 지모와 책략으로 다시 진나라로 가게 된 경위가 재미있게 그려져 있다. ('진어' 4편)
이동희 계명대 윤리학과 교수 dhl333@km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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