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명색이 관광호텔 앞 동네 판잣집 꼴 좀 보소"

대구 미래 설계 수성호텔 202호실, 동대구역·3공단 등 도시계획 지시

김재석 수성호텔 회장이 박정희 대통령의 체취가 남아 있는 수성호텔 202호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김재석 수성호텔 회장이 박정희 대통령의 체취가 남아 있는 수성호텔 202호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박정희 대통령은 대구를 찾을 때면 대구수성관광호텔(지금의 수성호텔)에 자주 묵었다. 1971년 4월 제7대 대통령선거 유세차 대구를 방문했을 때에는 이 호텔에서 내외신 기자 120명을 위한 리셉션을 갖기도 했다.

대구경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은 박 대통령은 수성관광호텔에 묵으면서 대구의 미래 청사진을 그린 것으로도 유명하다. 항상 묵었던 202호실에서 박 대통령은 대구시장을 만나 도시계획 등 대구의 발전 방안을 지시했다.

1966년 10월 초, 202호실에서 당시 태종학 대구시장을 만난 박 대통령은 판잣집 등이 늘어선 대구의 낙후한 모습을 보며 한숨을 지었다. 태 시장으로부터 주도로인 중앙통부터 시원하게 뚫어 대구 도심 개발을 확장한다는 방안을 들은 박 대통령은 "동구지역에 신도시를 건설하는 건 어떤가"라고 제안했다.

"인구가 늘고 도시가 팽창하면 중구 중심의 대구는 동서남북으로 뻗어나갈 수밖에 없소. 이곳이 명색이 관광호텔인데, 앞마당이라고 할 수 있는 상동(上洞), 중동(中洞), 하동(下洞) 꼴 좀 보시오. 온 동네가 들쑥날쑥 다 쓰러져가는 판잣집이야. 외국인들이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앞마당부터 볼 것인데, 이걸 보고 외국인이 뭐라고 생각하겠소. 이곳으로 오는 길을 정비하고, 동대구 부근에 역사(驛舍)를 지어 이곳까지 편히 올 수 있도록 해야 하오."

이후부터 대구 발전은 가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동대구역이 신설되고, 동대구역에서 수성관광호텔까지 시원하게 뻗은 왕복 4차로 동대구로도 이 무렵 구상됐다. 신암, 성당, 대명지구와 제3공업단지 구획정리도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박정희 대통령의 체취가 남아 있고, 대구 청사진이 그려진 수성호텔 202호실은 지금 박 대통령을 추억하는 공간으로 조성돼 있다. 박 대통령의 사진과 휘호 등이 방문객들에게 향수를 안겨주고 있다.

이대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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