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민아의 세상을 비추는 스크린] 코미디? 멜로? 뭐 볼까

새롭게 격돌하는 3색 한국영화

'변호인'이 한국영화 사상 아홉 번째로 1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 영화는 아직도 개봉 중이라 앞으로의 기록 경신 가능성을 남기고 있다. 좋은 영화를 놓고 관객 수치를 날마다 따지며 영화의 훌륭함을 진단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는 않다. 감동을 주는 영화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으므로 관객 수가 무슨 상관이랴만, 신인 감독의 데뷔작이라는 점, 그리고 영화가 주는 묵직한 메시지에 수많은 관객이 반응하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변호인 현상'은 대단하다고 칭찬받아 마땅하다.

이렇게 겨울 극장가 시즌 1라운드가 지나가고, 이번 주에는 한국영화 신작들이 '변호인' 이후 왕좌를 노리며 자웅을 겨루며 2라운드를 시작한다.

◆수상한 그녀

'수상한 그녀'는 어느 날 스무 살 꽃처녀가 된 칠순 할매가 겪는 좌충우돌 가족 코미디이다. 아들 자랑이 낙인 욕쟁이 칠순 할매(나문희)가 밤길을 방황하다 오묘한 불빛에 이끌려 사진관에서 영정사진을 찍고 나온 후에 뽀얀 피부와 날렵한 몸매의 스무 살 처녀(심은경)로 변신, 다시 한 번 빛나는 인생의 전성기를 즐기게 된다. '마이 파더'의 성공적 데뷔에 이어 470만 관객을 동원하며 '도가니법' 제정 등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킨 '도가니'의 황동혁 감독이 처음으로 코미디 장르에 도전했다. 영화는 칠십 대 나문희와 이십 대 심은경이 2인 1역을 맡는 독특한 아이디어가 빛나는 영화다. '써니'에서 주인공을 차지게 연기하며 연기력과 흥행력을 두루 갖춘 여배우로서의 가능성을 입증한 심은경의 첫 성인작이다. 연기의 대가인 국민 어머니 나문희와 동일 인물을 연기한다는 것이 커다란 부담일 수밖에 없을 텐데, 이 어린 여배우가 영화 전체를 거뜬히 어깨에 짊어지고 이끌어가며 성인 연기자로 성공적으로 안착한다.

그만큼 심은경이라는 배우의 매력이 영화에서 돋보인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와 걸쭉한 욕에, 노인의 몸짓과 표정이 싱그러운 여배우의 몸에 겹쳐지니, 그녀의 원맨쇼를 보는 것만으로도 영화 러닝타임 내내 지루할 틈이 없다. 그러나 노인을 위한 자리에 대한 우리 모두의 고민을 낙관적 가족주의의 회복으로 손쉽게 결론 내려 버린 점에서 메시지적 깊이가 아쉽다.

특히나 감독의 전작이 보여준 깊이 있는 성찰 의식을 고려하다면 더더욱 그렇다. 또한 여러 가지 자잘한 갈등이 노래에 담겨 뮤직비디오처럼 행복하게 봉합되며, 워너비 남성과의 연애담이 여자의 최고 전성기인 것처럼 비치는 것도 진부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배우 심은경의 발견과 가능성이라는 거대한 무기 앞에 무뎌진다.

◆피 끓는 청춘

청춘스타 박보영과 이종석의 앙상블로 큰 관심을 일으키며, 충청도 사투리의 구수함이 살아있는 '피 끓는 청춘'은 마지막 교복시대 1982년을 회고하는 복고풍 코미디다. '거북이 달린다'로 충청도 사투리의 맛있는 정감을 보여준 이연우 감독의 신작이다.

충청도 농촌의 한 농업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의리의 여자 일진 영숙(박보영), 전설의 카사노바 중길(이종석), 새침하고 예쁜 서울에서 온 전학생 소희(이세영), 이웃 공고 싸움짱 광식(김영광)의 엇갈린 사랑 방정식을 통해 1980년대를 아련하게 회고한다. 십 대의 막바지에 들어선 청춘들의 도전과 좌절의 드라마가 능청스러운 사투리와 30년 전 디테일이 살아있는 정겨운 패션을 통해 은근하게 펼쳐지는 충청도 로컬시네마로서의 큰 장점을 가진 영화다.

'과속 스캔들'과 '늑대소년'으로 흥행 보증수표가 된 박보영과 안방극장의 최고 스타 이종석의 캐스팅만으로도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데다, 권해효, 라미란, 김희원 등 색깔 있는 조연들의 코믹 열연이 기대감을 한껏 높인다. 그러나 화려한 캐스팅과 복고풍 유행 열기에도 불구하고 느린 충청도 말투처럼 코미디 타이밍이 엇박자를 보인다. 터져 나오는 웃음보다는 흐뭇하게 미소 짓는 장면들로 이루어져 있어 심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아날로그적 감성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관객이라면 만족할 만하다. 신군부 시절의 비이성적인 폭력성에 대한 심도 깊은 성찰이 아쉬우며, 해피엔딩으로 갈등을 손쉽게 봉합하는 방식 또한 무성의하게 여겨진다.

◆남자가 사랑할 때

황정민, 한혜진 주연의 정통 멜로드라마 '남자가 사랑할 때'는 누아르 영화 '신세계'에서 조연출을 맡았던 한동욱 감독의 데뷔작이다. 영화는 나이만 먹었을 뿐 형 집에 얹혀사는 건달 태일(황정민)이 사랑에 눈뜨는 과정을 그린다. 영화 초반은 평생 사랑과는 거리가 멀었던 한 남자의 깡패 세계를 그리고, 중후반부터는 사랑에 눈뜨면서 한 여자에게 순정을 바치는 눈물 나는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

시기마다 한 번씩 정통 멜로드라마가 부상해왔는데, 눈물을 짜내는 멜로드라마의 장점은 울고 싶어지는 척박한 현실에서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리며 배출되는 감정적 카타르시스를 통해 다시 세상과 맞설 힘을 얻어간다는 점이다. 영화는 사랑과 배신, 순수와 오해, 죽음과 후회가 뒤엉켜 적절하게 한순간 눈물을 쏙 빼고야 만다.

그러나 이 영화는 기시감이 너무도 강하다. '남자의 향기' '파이란' '약속' 등 조폭 멜로의 향기가 짙게 드리워져 신선함이 떨어진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