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필귀정] 안중근이 테러리스트라고

일본 정부 대변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라고 불렀다. 하얼빈 역 현장에 세워진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테러리스트'란 호칭에 담아냈다.

일본이 안 의사를 범죄자 내지는 테러리스트 취급하는 것은 처음도 아니다. 스가는 지난해 안 의사 표지석 설치 문제가 거론되자 '안중근은 범죄자'라며 반발했다.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한 인물로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범죄자라는 것이다. 산케이신문은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해 '모친을 살해한 문세광의 상을 서울역전에 세우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썼다.

이들의 주장은 옳은가. 안중근은 범죄자이고 테러리스트인가. 먼저 안중근은 어떤 일을 했는가. 안중근은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러시아군의 군례를 받던 이토를 사살했다. 러시아어로 '코리아 우라'(대한제국 만세)를 세 번 외친 후 잡혔다. 그리고 신분을 '대한의군 참모중장이자 특파독립대장'이라고 밝혔다.

오늘날 테러는 '무작위로 타깃을 골라 범죄를 저지르거나 불법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것'(criminal or illegal acts of violence at randomly chosen targets, in an effort to raise fear'Wikidipia)으로 정의된다. 수천 명의 애꿎은 생명을 앗아갔던 9'11은 테러다. 이를 저지른 알 카에다는 테러 집단이다.

'안중근=테러리스트'라는 등식이 성립하려면 안 의사가 불특정 다수를 겨냥했느냐를 살펴야 한다. 안 의사는 애초 이토 외 그 누구도 표적으로 삼은 바 없다. 오히려 안 의사는 조선 독립의 당위성을 알리기 위해 동경 한복판에서 테러를 하자는 제안이 나오자 "나는 그렇게 얻는 조선의 독립은 원하지 않는다"며 반대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그런 안 의사가 테러리스트면 독립군은 테러단체가 된다.

이토 히로부미(1841~1909)는 누구인가. 이토는 아시아를 전쟁으로 몰아넣은 장본인이다. 조선에 을사늑약을 강요하고 조선 식민지화를 주도한 원흉이다. 10만 명이 넘는 항일 의병을 죽인 학살자다. 안 의사는 일본 법정의 최후 진술에서 "한국의 비참한 운명은 모두가 이토의 조선 침략 정책 때문이었다"며 "이로 인해 역살당한 한국인이 10만 이상을 헤아릴 것"이라 진술했다. 안 의사는 법정에서 이토를 죽인 이유로 ▷한국의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무고한 한국인들을 학살한 죄 ▷정권을 강제로 빼앗은 죄 ▷동양 평화를 깨트린 죄 등 15가지를 들었다.

이토는 전쟁이 아닌 상황에서 살인과 테러를 저지르고도 일본 총리가 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열렬한 천황주의자였다. 1862년 천황 폐위 선례를 조사한다는 이유로 국학자 하나와 지로를 살해했다. 그리고 그해 12월에는 영국공사관 방화 사건에 가담했다. 그 자신 범죄자이자 테러리스트였다.

이토를 사살한 안 의사에게 범죄자의 허울을 씌운 것은 일본 법정이다. 당시 한국과 일본은 전쟁 상황이었다. 안 의사 스스로 법정에서 "의병 중장의 자격으로 한 것이지 자객으로서 한 일이 아니다"고 했다. 안 의사는 "나는 전쟁에 나갔다가 포로가 되어 이곳에 온 것이니 나를 국제 공법에 의해 다루라"고 요구했다. 일본 법정은 판사와 통역, 변호사에 이르기까지 일본인 일색이었다. 한국인 변호사가 있고 안 의사의 동생도 있었지만 발언권을 갖지 못했다. 일본 법정은 속전속결로 사형을 선고하고 집행했다. 전쟁 중 적장을 사살한 안 의사는 공정한 재판의 기회를 갖지 못했다. 일본인들에 의해 범죄자로 둔갑했을 뿐이다.

안중근을 두고 한국에서는 의사라 부르고 일본에서는 범죄자라고 부른다. 이토를 두고서도 한국은 동양의 평화를 해친 침략자로 규정하고 일본인은 근대화의 아버지로 칭송한다. 그렇다고 안중근과 이토를 동전의 양면처럼 보는 것은 옳지 않다. 범죄자이자 테러리스트는 이토일 따름이다. 이를 애써 눈감고 있는 것이 오늘날 일본의 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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