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우리 시조로 푼 한시] 賞月(상월) / 일타홍

백년의 슬픔과 즐거움 느끼는 이 몇일까

사랑이 너무 깊으면 그 사랑에 취하기 쉽다. 사랑이 깊어도 그 사랑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좋을 때, 즐거울 때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아름다움으로 남기고 미련없이 떠나는 시흔(詩痕)도 만나게 된다. 시인은 남편을 위해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다한다. 그리고 남편의 출세 가도를 위해 혼신을 다 바친다. 이제 할 일을 다 했다는 판단 하에 달을 보며 회한에 젖으며 목숨을 다하려고 다짐하며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우뚝 솟은 초승달 오늘 따라 저리 밝고

한 조각 고운 달빛 만고에 정다워라

넓고 넓은 세상 오늘 밤 달을 보며

백년의 슬픔과 즐거움 느끼는 이 몇이 될까.

亭亭新月最分明 一片金光萬古情

정정신월최분명 일편김광만고정

無限世間今夜望 百年憂樂幾人情

무한세간금야망 백년우락기인정

【한자와 어구】

亭亭: 우뚝 솟다. 新月: 초승달. 最分明: 가장 밝다, 가장 분명하다. 一片: 한 조각. 金光: 달빛. 萬古情: 만고에 정답다, 오랫동안 정답다. // 無限: 무한, 넓고 넓다. 世間: 세상. 今夜: 오늘밤. 望: 바라보다. 百年: 백년. 오랜 세월. 憂樂: 근심과 즐거움. 幾人: 몇 사람. 情: 느끼다, 생각하다.

백년의 슬픔과 즐거움 느끼는 이 몇일까(賞月)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일타홍(一朶紅)으로 알려진 기녀로, 운명적으로 심희수를 만난다. 남편을 공부시켜 임진왜란 때 도승지로서 의주로 파천하는 선조를 호종(扈從)했다. 심희수는 일타홍의 내조로 중국어도 공부했다. 서울로 돌아와 대제학에 올랐고, 이조판서, 좌의정에 이르렀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우뚝 솟은 초승달 오늘 따라 밝고/한 조각 달빛 만고에 정다워라// 넓고 넓은 세상 오늘 밤 달을 보며/ 백년의 슬픔과 즐거움 느끼는 이 몇일까'라는 시상이다.

이 시제는 '달을 감상함'으로 번역된다. 일타홍은 심희수의 첫 부인이지만, 정실이 되지 못했기에 양반집 규수인 노극신(盧克愼)의 딸을 정실로 맞이하도록 권유한다. 두 부인은 다정했고, 혼자가 된 시어머니도 극진히 모셨다. 이런 미담이 알려져 심희수가 이조낭관(郎官)에 있을 때 선조 임금을 배알하는 자리에서 남편의 승진을 간청하기도 했다.

시인은 행복한 나날을 보냈지만 소실인 자신의 처지가 비참하기도 하고, 남편을 오랫동안 차지한 것이 정실부인에게 죄스러워 결국 자살을 결심한다.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삶의 질곡에 사무친 나머지 달을 보며 시 한 편을 남긴다.

달은 곧 시적 자아의 밝음을 노래한 것이다. 비록 너 나 없이 갈 수밖에 없는 길로 한 줌의 흙이 되지만, 유난히 밝은 달은 넓은 세상에 태어나서 백년의 슬픔과 즐거움을 함께 맛보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라고 회한(悔恨)한다. 종장 처리의 가구(佳句)를 만나면서 인간은 바르게 살아야 함을 느낀다.

일타홍은 금산(錦山) 출신으로 주로 한양에서 활동한 조선 중기 기생이다. 일송(一松) 심희수(沈喜壽)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배움에 뜻을 잃었는데. 오직 주색이 있는 곳만 찾아 다녔다. 그때 일타홍은 헌신적으로 심희수를 계도하여 청운의 뜻을 이루게 했다. 일타홍의 헌신적인 보살핌으로 심희수는 22세의 나이로 진사시에 합격하고 3년 뒤인 1572년(선조 5년)에는 별시 문과에 급제했다.

일타홍은 황진이'이매창과는 달리 소년시절의 한 남성을 물심양면으로 보살피고 지조를 지키며 조선 정계에 우뚝 설 수 있게 키워낸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다양한 야사와 문집에 총 28개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이는 기생 출신 중 가장 많은 기록이다.

심희수와 일타홍의 이야기는 어우당 유몽인의 저서 '어우야담'에도 수록돼 있다. '어우야담'에는 심희수가 기생 일타홍을 연모하지만 일타홍은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심희수는 그 대상을 시험한다는 내용이 짧게 기록돼 있다. 이후 17세기 후반의 '천예록' '동패추록'에서 기생 일타홍의 헌신적인 보살핌과 심일송의 출세, 그리고 일타홍의 죽음으로 연결되는 설화가 시작된다.

장희구 (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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