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의 계절이 시작을 알리면 내 고향 구룡포에 생기가 돈다. 주말이면 외지에서 방문하는 손님으로 인산인해가 된다. 바로 과메기와 일본 적산가옥, 호미곶 해맞이광장이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다 보니 한국인이면 한 번쯤은 방문을 원하는 겨울철 관광 명소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겨울 바다 연인들은 꿈을 꾼다. 하얀 등대와 갈매기 천국, 눈이 부시도록 밀려와 부서지는 새파란 파도와 비릿한 내음, 연인들의 꿈을 만끽하게 해주는 구룡포의 첫 신고식이다. 확 트인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온 세상의 잡념이 파도에 묻혀, 해탈의 경지에 내가 서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하는 곳이 내 고향 구룡포이다.
겨울철 최고의 별미 과메기도 역시 구룡포다. 언제부턴가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과메기는 심혈관 질환과 노화방지에 도움이 되는 웰빙 식품이다. 미역, 김, 배추, 쪽파, 마늘, 고추장과 함께 과메기를 먹는데 맛과 영양 면에서 보완적인 궁합의 조화로 겨울 건강식의 백미이다.
구룡포는 근대 역사 거리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거주했던 곳이 최근 정비작업과 스토리텔링 붐에 힘입어 근대문화역사거리로 조성되었다. 그때 구룡포는 그야말로 물 반 고기 반이라 할 정도로 수산물이 풍부하였다. 이런 풍족한 수산 자원을 따라 이주하게 된 일본인들이 항구를 중심으로 거주하게 되었고 요릿집, 백화점, 여관 등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일부 건물만 남아 근대 영화세트장처럼 아픈 역사를 묵묵히 담고 있다.
광활한 태평양을 맘껏 취하고 외로운 흰 등대를 친구 삼아 기암괴석으로 다리를 놓은 작은 언덕배기에 학교가 있다. 필자가 다녔던 중학교이다. 온화한 날이면 학교 언덕에서 태평양을 가르는 상선을 보면서 미래를 꿈꾸기도 한 마음의 고향이다. 어느 여름날인가 점심을 일찍 먹고 학교 바로 아래 바다에서 파도와 신나게 놀이를 하다 쉬는 시간이 훌쩍 지나고 말았다. 선생님께서 손수 오셔서 우리를 찾아내 혼낸 일은 자연과 인간이 엮은 추억의 아름다움을 내게 선물하였다.
등교를 위해선 반드시 어판장을 경유해야만 했다. 그 당시에는 고래잡이가 허용된 시절이라 항구에는 포경선이 많았다. 대형 고래가 잡힌 날이면 구경꾼들이 어판장 한자리를 차지했고, 필자도 그곳에서 여러 번 세상에서 가장 큰 포유동물의 해부 실습 장면(고래 해체작업)을 볼 수 있는 행운을 잡기도 했다. 어판장은 비릿한 짠 냄새, 밀려 들어오는 고깃배들, 경매인들의 종소리, 거칠고 투박한 입담들로 하루를 열어가는 척박한 삶터였다. 구룡포의 애환이 시작되고 이어가는 생명선 같은 곳이었다.
아픔의 역사를 알기에 더욱 의젓하고 강인함으로 버티어온 구룡포가 거듭나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안봉전 대구한의대학교 화장품약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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