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 떠나면 우리는 어쩌나?"
올 연말 안동으로 이전하는 경북도청 인근 상인들이 시름에 잠겼다. 상인들은 주요 고객인 도청 직원이 빠져나가면 직격탄을 맞아 상권이 붕괴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도청 이전 터 개발에 대한 청사진도 아직 없어 이 일대가 슬럼화되지 않을까 근심이 깊다.
27일 정오쯤 도청 인근 음식점 등 상가를 둘러봤다. 도청 정문에서 연암로를 따라 200m를 걸으니 이곳에만 한식'중식당, 매운탕 식당 등 15개 음식점이 성업 중이었다. 가게마다 많은 도청 직원이 자리를 채웠다. 도청 동쪽 대구체육관로를 따라 올라간 대구체육관 주변에도 식당 20여 곳이 늘어서 있었다. 한 식당 주인은 "이곳 상권은 도청이 들어선 1966년 이후 형성됐다"며 "월 한두 차례 체육관에 행사가 열려 단체손님이 오기도 하지만 주요 손님은 꾸준하게 찾아주는 도청과 경찰청 공무원들"이라고 했다.
그러나 요즘 이곳은 뒤숭숭하다. 도청 이전이 속도를 내면서 가게 존폐를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화물 운반업을 하던 중 사고가 나 한참을 병원 신세를 지다 2010년 9월 어렵게 도청 앞에 중국음식점을 차린 구모(47) 씨는 "이 가게 덕분에 살림살이도 나아졌고, 가족 관계도 좋아졌다. 하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했다. 그는 주문의 70, 80%를 도청 직원들이 책임져 줘 그동안은 별달리 손님 걱정을 안 했다. 주문이 밀려든 땐 하루 70만원, 못해도 월 1천만원의 수입을 올려 자식들 공부시키는 데도 어려움이 없었다. 구 씨는 "도청을 따라 안동으로 갈까도 생각했지만 자리를 잡을지 알 수 없어 포기했다"며 "도청 자리에 다른 기관이 빨리 들어오기만 바라고 있다"고 했다.
추어탕 식당도 걱정이 태산이다. 손님의 80%가 도청 공무원이었다는 이 식당 주인은 점심은 물론 야간근무를 하는 직원들이 밤에도 찾아온다고 했다. 그는 "경북대 교수와 학생들이 종종 왔지만 주요 손님이 도청 직원이었던 만큼 이전 후에는 가게 운영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체육관 앞 골목에서 28년째 장사를 한 칼국수 식당 직원 서모(72'여) 씨는 "도청 직원만 보면 '(도청 이전 후엔) 뭐가 들어서는지를 묻거나 이전할 때까지만이라도 자주와 달라고 공짜로 공깃밥을 주곤 한다"고 했다.
주민들도 이 일대에 사람의 발길이 줄면 우범지대로 변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인근 한 아파트 주민 김모(46) 씨는 "도청이 있는 동안에는 집값이 어느 정도 유지됐지만 이전을 하고 나면 주변 인구가 줄어들어 집값이 더 내려갈 것"이라고 했다. 유모(58'여) 씨는 "이전 뒤 곧바로 이전 터가 개발되더라도 입주까지는 몇 년이 걸릴 것"이라며 "한참 동안 도청 터가 비면 밤에는 무서운 곳으로 변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고 했다.
여모(65'여) 씨는 "이곳을 공원화한다, 또 박물관이 들어선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내려갈 집값 걱정에 잠이 안 온다"며 "이 일대가 낙후하지 않으려면 시청이나 법원 등 관공서가 들어와야 한다"고 했다.
도청 이전이 코앞에 다가왔지만 대구시는 아직 이전 터 개발 계획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국토연구원이 이전 터 개발과 관련한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으나 그 결과가 빨라도 6월은 돼야 나올 전망이다.
구본근 대구시 정책기획관은 "14만여㎡이나 되는 도청 부지는 대구에 마지막 남은 개발 부지"라며 "앞으로 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넓은 부지 안에 행정타운과 연구개발시설을 함께 조성하는 등 대구의 새로운 랜드마크를 세울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서광호 기자 koz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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